설마와 혹시
설마와 혹시
  • 중부매일
  • 승인 2018.07.1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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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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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에 친구들과 밤새의 이야기를 하며 재미있게 걷던 중학생 두 명이 별안간 인도로 뛰어든 승용차에 치여 현장에서 사망한 교통사고가 있었다. 그 후 한참을 지나 그 사망사고지점을 알고 지나가던 노부부가 '설마 이런 백주에 그런 일을 당하겠어?' 라는 말을 하며 지나가는데, 공교롭게도 도로 옆 고층건물의 위쪽에서 떨어지는 두꺼운 유리창에 머리를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을 증명해주는 이야기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설마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야 하겠는가를 믿고 자만 방심하다가 크게 낭패를 봤을 것이다. 설마의 주인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안이한 생각을 하는 당신이 바로 그 표적일 수 있다. 비문화 때처럼 설마 하다가 설마에게 잡혀간 사람이 한 둘 이라면 어쩌다 설마가 모른 척하고 지나갔을지 몰라도 최첨단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요즘엔 설마도 전산화되어서 놓치질 않는다고 한다.

6.25전쟁 때 중학교 5학년짜리 막내아들이 학도병으로 출정하여 낙동강 전투에서 사망했거나 실종됐을 거라는 소식을 두 다리를 잃고 돌아온 자식 친구에게서 들은 어머니는 '똑똑하고 영리한 우리 아들이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올 거야!'라며 기다렸다.

휴전 후에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사통지도 없고, 시신도 없고, 본 사람도 없단다. 군에 확인을 해도 '낙동강전투에서 행불'이라고만 알려준다. 생때같은 자식이 학도병으로 출정한 날부터 그 부모는 늘 새벽마다 우물에 가서 정화수를 떠다가 부뚜막에 올려놓고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축수했으며, 저녁엔 사립문도 열어놓은 채 잠을 잤다. '혹시 우리 아들 장수가 살아서 돌아올 지도 몰라.' 집 나간 뒤 강산이 세 번 변하고서 1983년 이산가족 찾기를 할 때 머리부상으로 기억을 잃었던 학도병 아들을 찾았다. 이런 게 기적일 것이다.

제 이름(설마)만 불러도 부른 사람을 잡아간다니 아예 그 쪽은 연을 끊고 지내야겠다. 죽은 사람도 살리고, 탐구력과 창의력에 문제해결력과 준비성과 매사 철저히 확인하는 습관도 크게 길러준다는 전지전능의 혹시(或是)는 닳고 닳아 다 없어질 때까지 일상의 필수품으로 간직하고서 잘 사용해보자. 설마와 혹시. 설마에만 의존하며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그냥 두고서 설마는 한 번도 비껴가지 않았으며, 혹시나 하면서 가능성을 믿고 목표를 향해 정성을 담아 땀을 흘린 이가 일을 그르쳤다는 말은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단다.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설마는 요행과 우연만을 노리는 기회주의일 뿐 아니라 개인적으론 많은 사람들을 한탕주의의 일회성자와 무위도식자로 만들고, 그 결과로 사회적으론 공중도덕과 질서를 크게 어지럽혀 국가적인 위기를 몰고 올 수도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의식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악습 중의 하나로 꼽힌다. 혹시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이고, 성취욕을 끌어올리는 기폭제이며, 미래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반드시 이루어내게 하는 신뢰와 의지의 결정체이기에 결코 주인을 배신하지 않으며, 운명까지도 같이하는 아주 소중한 친구다. 배려할 줄을 모르는 의지 약한 이는 설마(他人)를 신봉하여 비굴하게 살지만, '왜? 어째서?' '그래서? 그다음은?' '혹시나, 만약에 ~한다면,'을 즐기는 이는 항상 자신을 믿기(自矜心)에 내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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