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영상시대다. 고정되고 붙박혀있던 많은 것들이 활발히 꿈틀대고 율동하는 동영상 이미지들로 대체됐다. 영상을 통해 사고하고 발언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시대의 흐름을 이제 더 이상 거부할 수 없게 됐다.
 또 지금은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들 삶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두 영역으로 나뉘었다. 고속통신망 가입자 1천만 시대를 맞아 사이버 세상이 실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이를 압도하려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역시 이번 대선만 하더라도 과연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견인할 것인가가 관심사 아니던가.
 하지만 아무리 영상과 인터넷이 삶의 색깔과 무늬를 바꾸는 시대라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여전히 우리는 사고함으로써 인간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사고작용의 근간이 될 책읽기 행위의 중요성은 영상시대, 디지털시대에도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그 당연한 사실을 너무 무책임하게 망각하고 있는 것같다. 문자에 대한 영상의 우위성을 이야기하고, 인터넷의 가공할 위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엉뚱하게도 문자텍스트가 갖는 의미를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장 출판시장의 위축이나 학생들의 독해력 저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성장기 어린이, 청소년들의 책읽기 외면이다. 태어나서부터 사운드와 이미지가 결합된 온갖 동영상에 포위돼 살아온 요즘 아이들에게 영상은 삶의 환경 그 자체면서 절대적인 정보통로이다. 텔리비전을 보며 세상을 인식하고, 비디오를 보며 세상을 느끼고, 게임을 하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 자체를 탓하는 건 부질없다. 문제는 영상정보가 가진 문제점을 해소시키고, 일방적 정보공급에 따르는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일종의 보완체계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다양하고 풍부한 책읽기야말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자리에 앉아 일정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책읽기는 집중력과 깊은 사고 작용을 요구하는 정신적인 노동이다. 일체의 여백없이 지속적으로 정보를 과잉 공급하는 영상매체의 해독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특히 청소년기 집중적인 책읽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인간주체 형성, 존재양식, 행위유형 등에 독서가 미치는 심대한 영향을 감안할 때 더욱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는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서 표류하거나 익사하지 않는 필수적 생존전략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는 수심도 깊고 곳곳에 암초들도 널려있으며 생명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생명체들도 그득하다. 책 읽기 싫어하고 잘 읽지 못하는 소위 「책맹(aliteracy)」이라면 절대 무사귀환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과 컴퓨터 네트워크가 개척하는 21세기는 영상과 문자가 효율적인 상호보완관계를 유지하는 개인과 국가에게만 발전과 번영을 약속하고 있다. 「넷맹」도 무섭지만 「책맹」은 더 암담하다. 책읽기를 권하고 책읽는 방법을 꾸준히 가르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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