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선거보다 역동적이고 극적이었던 이번 대통령선거는 변화를 거부하는 어떤 세력도 역사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기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래 압도적 원내 과반의석을 가진 제1당이었으며, 6.13 지방선거 압승으로 지방권력과 의회 또한 장악했던 거대정당 한나라당은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무심했다. 전국을 붉은 색으로 뒤덮은 지난 월드컵의 열기를 보면서도 그 같은 장관을 가능케한 내적 동인이 무엇인가 탐구하지 않았다. 중앙 및 지방권력과 돈, 그리고 대세론이라는 심적 지원군까지 갖고 있었으니 더 이상 부족할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은 그 같은 판단을 여지없이 무력화시켰다. 바로 몇 개월전 지방선거전까지 유효했던 선거전략과 전술은 더 이상 쓸모없었다. 국정원의 도청폭로와 상대 후보에 대한 흠집내기라는 네거티브 선거전은 유권자의 냉대로 돌아왔고, 핵개발을 둘러싼 미북한간의 첨예한 대립 등 매거톤급 이슈도 예전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번 선거전을 희대의 코미디로 전락시키면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우롱한 정몽준대표의 막판 지지 철회에 대한 심판도 매서웠다. 선거운동 종료 1시간 반 전 터진 이 희대의 해프닝에 반응한 일련의 움직임들은 민심의 물줄기를 급격하게 되돌리려는 어떠한 부당한 시도도 실패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 같은 점에서 노무현당선자가 지난 20일 민주당의원 초청오찬에서 「두려움」의 소회를 피력한 것은 그가 이번 선거의 핵심적 교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음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이날 소액성금 운동 등의 변화를 희망이라고 표현한 노당선자는 「국민의 변화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컸고, 낡은 정치의 타성이 남은 것은 아닌지 두렵게 하는 사건도 많았다」고 피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 가까이 갔다고 자부하지만 낡고 안이한 생각에 안주하지 않도록 배우고 또 깨우치겠다」고 밝혔다.
 일체의 정치적 거래로부터 자유로운 국민적 모금운동을 통해 선거전을 펼치겠다는 노무현 후보진영의 선거전략은 깨끗한 선거, 깨끗한 정치를 염원했던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들불처럼 급격히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심대한 규모의 정치적 각성은 한국정치사에 유례없는 자발적 정치참여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갔다.
 이 때문에 노당선자는 선거유세 후반 들어 새로운 정치혁명은 이제 시작됐다고 선언한 바 있다. 종전까지는 자신이 새로운 정치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으나 이미 정치혁명이 도도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만큼 자신이 그 물결을 뒤쫓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노당선자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민심의 궤적을 놓치지 않고 따라잡는가 여부가 재임 5년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그 자신 밝힌 것처럼 「낡고 안이한 생각에 안주하지 않도록 배우고 또 깨우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밝게 웃으며 물러나는 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노당선자가 임기 내내 국민에 대한 두려움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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