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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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아침뜨락 음수현] 한 달 전, 모임을 마치고 후배를 버스 정류장에 바래다주며 생긴 일이다. 후배와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남학생들이 자전거 타이어가 바람 빠진 듯 무겁게 들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아이여서 유심히 봤다. 얼핏 들으니 핸드폰 배터리도 소진되어 당황한 아이는 버스 아저씨가 태워주시면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집으로 가려던 모양이다.

갑자기 나는 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얘야 아줌마 알지 않니? OO아파트 OO동 살지? 자전거 타이어 바람이 빠졌나봐. 아줌마가 차 가져와서 태워다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랩을 하듯 말들이 튀어나왔다. 아이는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기막힌 타이밍에 우연히 벌어진 일이기는 했지만, 평상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잘 하던 아이여서 눈여겨보았던 터라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뒤, 독서모임에서 '대리사회'를 쓴 김민섭 작가를 초대했다. 작가가 강연 초반에 던진 화두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였다. 그 일화도 안내해줬다. 35년 동안 해외를 간 적 없던 작가는 큰 맘 먹고 일본여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아이의 수술 일정이 잡혀 비행기 티켓을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다. 작가는 소액밖에 환불 받을 수 없게 되자 자신과 이름이 같고, 비행기 티켓을 양도해줄 수 있는 여권 영문 이름도 같은 김민섭을 찾기 시작했다. SNS에서 한때 유명했던 '김민섭씨 후쿠오카 보내주기 프로젝트'는 김민섭 찾기도 목표였으나 사람들이 함께 연대하면서 신나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3일만에 93년생 김민섭을 찾을 수 있었다. 산업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김민섭씨는 졸업전시자금을 모으느냐 여행은 포기하고 있던 평범한 휴학생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교통 프리패스와 와이파이, 숙박비를 지원하겠다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누군가가 잘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삶의 어느 순간에서 믿을 수 없는 따뜻한 연대가 일어났음을 기억하고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정말 이 사회가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나는 우연찮게 아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줬는데 일주일 뒤쯤 다른 이에게 호의를 받게 되었다. 병원에 진료 받으러 갈 일이 있었다. 주차타워는 공사중이라 차는 붐볐고, 2바퀴 정도 돌아서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삑삑 차 잠금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다 싶어서 창문을 쓰윽 열고 여기저기 돌아보는데 어디에서 난 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다시 창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가려던 찰나였다.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똑똑' 나는 다시 창문을 쓰윽 열었다. "비상등 켜고, 기다렸다가 여기다가 주차해요." 진료예약 시간이 다 되어서 마음이 분주하던 차에 어떤 분의 호의를 받게 되었다. 오랜만에 받은 타인의 작은 호의에 기분이 좋았다. 더운 여름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일상이지만, 선한 마음, 작은 행동, 몸짓 하나, 좋은 말은 누군가를 미소 짓게 하는 순간을 만드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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