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으로 접어들면서 「지방화 시대」라는 말이 회자되더니 요즘엔 「지방 분권」이란 말이 더 자주 쓰이고 있다. 역사는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류를 이뤘던 것은 지방분권이다.
 통신수단이 덜 발달된 중세까지는 광대한 영토를 중앙에서 일일히 통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지방분권을 선택했던 것이고 그러한 방식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그는 대학도시로 유명하다. 아직도 중세의 대학건물이 남아 있으며 「황태자의 첫 사랑」에 등장하는 「붉은 황소의 집」도 그대로 있다.
 영국은 아직도 잉글랜드와 스코트랜드, 웨일즈의 지방색을 잃지 않고 있으며 스페인 역시 안달루시아, 바르셀로나의 정서가 마드리드와 다르다.
 미국 동부의 「아 비 리그」라고 불리는 8개 명문대는 뉴욕이 아닌 지방에 위치해 있다. 허기사 미국은 일찍부터 중앙, 지방의 개념이 없는 국가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만 그토록 중앙집권의 형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땅덩어리가 좁고 단일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 중앙집권으로의 집착증을 가져온 주된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며 통치체계의 세계적 흐름은 역시 지방분권이다. 지방분권의 관건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적 독립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화 시대를 운운했기 때문에 껍데기는 지방화, 알맹이는 중앙화라는 기형적 구조를 탈피치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 분권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지방자립도를 높이는 지자체의 자구노력과 함께 웬만한 사무나 인사권을 과감히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중앙정부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지방문화권을 설정하고 또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점에 있어서는 충청도가 매우 취약하다.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충청도는 서울 문화권의 영향아래 놓여 있다. 불과 2시간 이내면 서울과 오가는 인접성 때문에 충청도 문화권은 제대로 착근하지 못하고 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충청도는 서울 문화권의 직격탄을 맞는 사정거리내에 있다.
 그리하여 청주 등지를 오가는 대학생, 대학교수, 문화계 인사들은 청주지역을 단지 스쳐가는 곳으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머무르지 않고 스쳐가는 곳에서 어떻게 지방 문화권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겠는가.
 지방분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청주는 문화의 간이역으로 남아 있다. 명색이 교육도시라고 하면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와 어깨를 견줄만한 명문대학도 없고 문화 인프라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오송 일대에 서울대 지방캠퍼스 유치 얘기가 들리기는 하다만...
 행정수도가 충청권으로 이전된다면 이런 문화적 취약점은 일거에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충청도의 문화는 예로부터 모든 것을 넉넉하게 받아들여 새 문화를 숙성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기존의 충청도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이주의 새 문화를 받아들이는 혜안이 필요하다.
 지방분권이라는 21세기의 화두를 우리는 행정수도의 이전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감나무밑에서 입벌리고 있는 식은 안된다. 행정수도를 수용할 준비와 기존의 문화를 알뜰히 가꾸는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우리고장 지방분권 실현의 키 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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