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노래는 아동문학가 고 이원수선생(1911∼1981)이 어린이잡지에 발표하여 당선된 동요 「고향의 봄」이며 홍난파선생이 작곡 했다.
 그렇다. 앞마당 사립문 흙담장에 그리고 뒷동산과 동구밖 냇가에 앞다투며 피어나는 온갖 꽃들로 꽃동네를 이루고 달래나 냉이 꽃다지 등 나물을 캐는 고향의 봄은 더욱 더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가슴에 다가온다.
 고향은 언제나 인간의 원형적인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처럼 그리운 고향이 꽃동네일진데 어찌 꿈엔들 잊힐리 있겠는가.
 이처럼 고향을 일컫는 「꽃동네」가 고향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며 배고품과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는 길 잃은 양들의 보금자리로 다시 자리잡은 곳이 음성 꽃동네이다.
 음성 꽃동네는 지난 1976년 8월 무극천주교회 주임신부로 온 오웅진신부가 부임 한달여쯤 후인 9월 동냥을 하면서 자기 보다 더 어려워 동냥 조차 힘들어 하는 걸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최규동할아버지(1990년 타계)와 만난후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란 것을 깨닫고 이들을 위해 「사랑의 집」을 지으면서 태동되었다.
 음성 꽃동네는 이렇게하여 27년동안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후원회원들의 성금과 국가보조금 기부금 및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속에 각종 시설을 확충하고 이제는 심신장애인과 노인 부랑인 알코올중독자 정신질환자 등 4천여명을 수용하고 있으며 오늘날 전세계적인 사회복지 시설인 「사랑의 천국」으로 자리잡았다.
 이같이「사랑의 천국」으로 국민들의 적극적인 성원과 온갖 지원을 받아온 음성 꽃동네회장 오웅진신부가 요즘 검은돈(국고보조금 횡령 및 부동산 투기 등 의혹) 구설수에 올라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에대해 꽃동네 변호인측은 「검찰과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일체의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부인하고 있어 검찰의 공정하고 빠른 수사결과가 요구되고 있다.
 오웅진신부가 꽃동네의 운영에서 손을 떼었던 것은 2년여 뿐. 그사이에 종신서원한 오웅진신부가 또다시 꽃동네 제 3대 회장에 선임되어 설립 27년동안에 25년여를 운영해왔으며 20여년동안 감사가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긴 세월 힘없고 병든자들의 대부가 되어 국민적 추앙을 받아왔지만 그동안 밀실및 독단적인 꽃동네 운영이 빚은 자업자득이란 지적이 일고있다.
 수도자들은 복음삼덕 즉 세상사물의 포기인 「청빈」과 자기몸에 대한 권리의 포기인 「정결」및 자기자유에 대한 권리 포기인 「순명」함으로써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원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완전히 봉헌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제에게도 인간적 실수나 약점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꽃동네의 고백성사가 있어야 할 때인것 같다. 교계와 사제 및 신자와 건강한 우리사회를 위해.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