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표언복 전 대전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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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중부시론 표언복] 1924년 초겨울,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남루한 차림의 무섭게 생긴 장정 하나가 춘원 이광수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키가 크고 몸이 굵고 시커멓게 생긴 장정'. 행색이 어찌나 남루한지 거지옷보다 좀 나은 참혹한 모습이었다. "제가 최서해올시다" 곧바로 '고국' '탈출기' '홍염'등을 내어 일약 문단에 기린아가 되고, 살다 간 세월 길지 않아 남기고 간 작품 많지 않아도 남북한 문학사에 다같이 굵은 활자로 이름 석 자 뚜렷하게 남긴 작가 최서해가 맨 처음 이광수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무슨 사정이 있어서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막연히 아는 사람 몇 염두에 두고 막무가내로 결행한 상경이었다. 네 끼를 굶은 끝에 겨우 동향의 김동환을 만나 밥을 얻어먹고 보름쯤 신세를 지다 찾아간 곳이 이광수의 집이었다. 그가 옷부터 갈아입히고 여벌옷까지 주어 소개해 보내준 곳이 양주의 봉선사. 대표작 '탈출기'의 산실이다. 그러나 봉선사 생활은 길지 못했다. 이번엔 다시 방인근을 소개해 주어 그가 내는 '조선문단'의 기자가 되었다. 1924~5년 사이 그의 출세작 대부분을 지면 걱정 없이 발표할 수 있었던 배경이 그것이었다. 

문단의 반응은 뜨거웠다. 민족 공동체가 거대한 유랑민 집단으로 전락해가던 시절 그 실상을 실감나게 그려 보인 핍진성 때문이었다. 누구보다도 반기고 환호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부르짖으며 이 땅의 가난한 노동자 농민들을 일거에 해방시킬 듯이 기세를 올리던 카프(KAPF)-좌파 문인들이었다. 백만 원군이라도 얻은 듯 환호작약하며 그를 카프에 끌어들여 재무위원이라는 감투까지 안겼다. 그러나 그건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조선의 찰스 디킨즈'라 불릴 만큼 간도 일대를 떠돌며  머슴, 식당 심부름꾼 등 온갖 궂은 일을 다 해 가면서도 굶는 일이 먹는 일보다 더 잦던 그는 고국에 돌아온 뒤에도 이 굶주림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조운의 누이를 아내로 맞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둘씩이나 둔 가장의 처지에 '조선문단'이 문을 닫는 바람에 '중외일보'에 들어갔으나 월급이라곤 2년 동안 단 한 차례 밖에 받지 못했다.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학예부장 자리였다. 홀로 고고한 카프 문인들의 질타가 가을 서리같았다. 매춘이나 다름없는'매신(賣身)'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카프에서 내어쫓고 말았다. 

소화기 질환으로 약을 달고 살던 그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위문협착증. 잦은 굶주림 때문에 얻은 병이었다. 6일을 내리 굶은 적도 있다니 소화기가 온전했을 리 없다. 이익상이 달려가 3백 그램의 피를 뽑아 수혈했으나 그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나이 불과 31세였다. 최서해의 장례식은 과히 초라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람 이병기가 영정을 쓰고 심훈이 조시를 읽은 그의 장례식장에 카프문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얼마 전 '3김 시대'를 풍미한 마지막 생존자 김종필 전 총리가 세상을 떴다. 훈장을 주느니 마느니, 조문을 하느니 마느니 말도 많고 설도 잦더니 대통령은 끝내 그의 마지막 길을 외면했다. 일반 자연인이라면야 타낼 일도 아니고 나무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인데…. 대통령이 어느 특정한 계층이나 세대 혹은, 특정한 집단의 이해나 정서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저잣거리의 잡배들이라도 다안다. 지지층이 누구이고 득표율이나 지지율이 얼마이든지 상관없이,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국민 모두를 위한 국민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독실한 불교도인 전두환 대통령이나 노태우 대통령이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기도를 올리고, 개신교 장로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불교나 원불교 의식이 행해져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모두 그 때문이 아니겠는가. 북의 김영철을 불러 환대하고 김정은을 만나 껴안을 수 있는 마음이라면 김종필의 빈소라고 외면할 이유가 없다. 대화와 소통, 화해와 통합이 시대정신이 된 터에 한사코 가르고 나누고 밀치고 줄 세우기를 멈출 줄 모르는 대통령의 행보가 아무래도 불안하다. 이승만 .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에 향을 올린  문희상 새 국회의장의 행보가 옳다. 지난 9일이 최서해의 86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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