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청자 호랑이 모양 변기. /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호랑이 모양 변기. / 국립중앙박물관

[중부매일 문화칼럼 이명훈] 조선시대 실학자인 서유구가 저술한 <섬용지>라는 책을 읽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호자'에 대해 전혀 다르게 나오는 것이다. 충남 부여의 군산리에서 출토된 '호자'를 사진으로 보자 흥미로왔었다. 호랑이 모양의 이십 센치 미터 정도의 용기인 그것이 백제 귀족의 이동식 변기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그렇게 알고 있던 나는 다시 눈길을 박았다. '옛 이름은 타호(唾壺)인데 호자가 된 것은 아마도 호랑이 모양을 본떴기 때문일 듯하다(古名'唾壺', 爲虎子, 疑象形也). 호자가 타호 즉 가래나 침을 뱉는 그릇인 타구라는 것이다.

이게 뭔가 싶어 검색을 해나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엔 주기(注器) 즉 물그릇이라는 견해와 변기라는 견해로 나뉘는데 변기일 가능성이 높다며 남성용 이동식 변기라고 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남성용 변기라고 되어 있다. 어느 것이 맞을까. 그닥 중요하지 않은 케케묵은 유물에 대해 쓸모없는 관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 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정확한 답이 쉽지 않을 것이다. 호자가 변기라는 주장에 대해 나름의 연구가 되어 있을 것이다. 타구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그 말이 나오는 <섬용지>가 포함된 <임원경제지>의 저자인 서유구가 보통 인물이 아니고 보면 쉽게 무시하진 못할 듯하다. 서유구는 조선 후기의 정치가이자 실학자이다. 대제학까지 지낸 인물로 관직을 벗고 시골에 내려가 일상의 전부를 궁구하려 했다. 명물도수지학이라고 해서 각 사물의 이름을 정확히 하고 그것의 법도를 밝히는 데에 헌신했다. 그 결과가 <임원경제지>라는 방대한 분량의 실용 백과 저서로 나온 것이다.

호자가 이동식 변기라는 해석에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 크기가 소변에 적절한 것일까, 소변이 차고 넘치지는 않을까. 귀족들이 술을 마실 때 사용하기도 했다고 친다면 소변양이 더욱 많아질텐데 저 호자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귀족들은 자기의 소변이 든 용기를 들고 다닌단 말인가. 어딘가에 소변을 버린다해도 냄새가 남을 것이며 옷에도 번질 것이다. 변기임이 사실이라면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인정하면 되지만 그것이 추정임을 생각하면 마땅한 답변이 궁색해질듯하다.

변기 아닌 타구라고 한다면 귀족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당대의 서민들의 눈에도 그 모습이 이해가 쉬운 반경에 들어가게 된다. 타구로 인해 땅에 아무렇게나 침을 뱉지 않기에 귀족의 예의와도 통하고 지금 말로 친다면 환경 보호와도 어울린다.

사실 파악이 쉽진 않겠지만 지금부터 200 년 전쯤에 당시 성리학의 말폐적 증상에 저항해 실사구시를 추구한 실학자로서 명물도수지학에 철저했던 지식인이 타구라고 명명한만큼 그 가능성 역시 호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의 장에 들어서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그것은 전문가들의 몫이다. 살펴 봤듯 호자가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당대의 문화가 달라지는 면이 생긴다. 호자에 국한되는 문제만이 아니다. 역사적 유물 중엔 이처럼 해석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들이 있을 것이며 그만큼 사실 규명에 필사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기존의 통념에 제기되는 전혀 다른 시각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 및 역사는 오류를 벗어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해석은 중요하며 그에 따라 과거의 문화가 달라진다. 그것은 현재 뿐 아니라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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