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는 국민 정체성 형성을 위한 가장 기초적 이데올로기 자료로서 중요시된다. 헌법에 명시된 중요한 의무이자 권리인 교육 행위를 통해 국민은 국가 및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규범적 논리와 행동양식을 부여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에서는 아직도 성차별적 논리를 바탕으로 여성과 남성을 기술하고 있어 보완이 요구되고 있다. 여성개발원이 제7차 교육과정에 대한 분석과 의견을 토대로 최근 개발한 '교과별 양성평등 교육내용'이라는 보완안은 이 같은 내용의 성(性) 형평성 분석 결과를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여성개발원이 지난 한 해 공적·사적 영역에서 삶과 가치를 다루고 있는 도덕·사회·실과 등 3개 과목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선 여성과 남성을 묘사할 때 성차별적 이분법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사회과 초등과정의 경우 경제활동에서 여성은 소비자로 남성은 생산자로 이분화돼 있으며, 실과에서는 여성이 가사노동의 전담자였던 반면 도덕과에서 직업활동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사랑과 희생, 봉사 등의 관념이 여성의 몫으로 그려졌는가 하면 여성이 직업을 갖는 이유는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실과 교과서에서 여성 직업이 보육교사, 영양사 등 전통적 직업군에 한정된 반면, 남성의 직업으로는 낙농업자로부터 광고기획자, 선물거래사 등 현대의 다양한 직업이 망라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
 급속한 사회변동을 기술하는 데에서도 균형적 시각의 부족이 드러났다. 가족해체나 이혼율 증가 등 사회문제의 주요 원인이 여성의 사회진출이라는 논리가 반복 기술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성과 이성교제'라는 단원에서 '순결'만을 강조할 뿐 '피임'에 대한 설명이 부재한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여성의 책임을 주로 강조하던 순결 이데올로기의 그림자도 짙거니와 현실에 유용한 실제적 정보제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사회과 초등의 경우 역사 속에서 유관순이나 명성황후 외에 여성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것도 '남성 위주의 역사 서술'이라는 한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여러 차례 교육과정 개편을 거치면서 성 형평성 기술이 개선돼왔지만 우리 교과서가 여전히 적잖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수리나 언어 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다른 과목에서도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엄마, 대외활동을 하는 아빠 식의 성차별적 삽화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실인 것이다.
 특히 교육현장에서도 성차별적 시각의 시정과 양성평등적 관점의 확산이 절실하다. 초등학교에서 남자아이들부터 번호를 매기거나, 역할놀이를 하면서 남자는 의사, 여자는 간호사 식으로 구분하는 관행 등은 성적 정체성을 막 깨우치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위험성이 농후하다. 교육종사자들의 인식전환이 새삼 요구되는 것이다.
 교과서의 양성평등적 기술은 일상적 교육현장에서의 성차별적 관행을 일소하는 중요한, 첫번째 출발점이 돼야한다. 교과서 개편작업시 이러한 지적사항들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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