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사건 이후 인류에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이론이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이었다.
 이슬람이 이슬람으로, 서구가 서구로 남아 있는 한 두 거대 문명이 벌이는 갈등은 지속될 것이다. 즉, 이슬람 국가들은 서구에 점점 덜 우호적인 정책을 취할 것이고, 이슬람 집단과 서구 사회 사이에서 간헐적인 소규모의 폭력, 때로는 심각한 폭력 사태도 빚어지게 된다는 것이 이른바 문명충돌론의 주요 골자다
 그러나 미국과 이라크와의 문제는 기독교대 이슬람교라는 식으로 단순히 종교나 문명간의 충돌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전세계 각국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각기 다른 처방과 해법을 쏟아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게 이라크와 미국간의 갈등을 조명해 볼 수 있다.
 지난 주말 평화를 바라는 많은 세계시민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반전시위를 세계 곳곳에서 벌였다.
 유럽과 미주, 중동, 아시아 등 전세계 수십여개 국가의 세계인 1천여만명 가량이 참여한 사상 최대 규모의 이번 시위에서 시위대들은 미국과 영국 등 이라크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몇몇 국가들을 집중 성토한 뒤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여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 승인을 받으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더욱이 전쟁을 적극 반대하는 프랑스와 독일 등 국가들은 유엔의 무기사찰 강화 만으로도 이라크를 무장해제시킬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미국의 부시 행정부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유엔 안보리에서 가진 이라크 사찰에 대한 2차 보고 자리에서 한스 블릭스 사찰위원장은 지금까지 어떠한 대량 살상무기도 찾아내지 못했고, 이라크도 사찰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말해 무력공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또한 안보리에서 프랑스 외무장관의 전쟁 반대 발언에 많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미국과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들이 전쟁보다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는 속내를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다.
 사태가 이처럼 진행되자 미국의 언론들도 이번 반전시위는 9.11 테러 이후 2년간에 걸친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이렇게 쌓인 세계적인 반미감정이 낳은 결과라면서 부시행정부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뒤늦게 나마 한발짝 손을 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60-70년대 뜨겁게 일었던 반전시위 여파가 가장 컸다.
 물론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유럽의 도움 없이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고, 또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일의 해결은 전쟁만이 능사가 아니며 대다수 세계 시민이 원하는 것은 평화가 우선이다.
 아무리 그럴듯 한 대의명분을 내건다 해도 전쟁은 졸렬한 수단이라는 평을 면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제거가 목적인지, 전쟁 그 자체가 목적인지 분명한 입장을 세계 시민에 밝혀야 한다.
 또한 강대국이라 해서 우격다짐으로 일관해서도 안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