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가 꽉 막혀 있다. 마음의 비상구도, 외형적인 비상구도 봉쇄돼 버린 답답한 사회다. 툭하면 불거지는 대형참사 앞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잃고 있다. 성수대교 참사, 인천 호프집 화재, 대구 지하철 참사 등 터졌다 하면 수십명, 수백명이 떼죽음을 하는 비정한 세상이다.
 수해나 폭설 등 자연적인 재해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이라도 하겠지만 사람들이 만든 구조물이 부실하고 재난 관리체계 또한 적절치 못해 발생하는 대형 사고여서 당국의 허술한 안전망 관리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전동차에 불이 났음에도 다른 차선에서 오는 전동차가 정지를 하지 않고 역내로 진입했다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문이 열리지 않는 등 10분동안이나 꾸물거려 피해를 더욱 키웠다. 사망자는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다. 일 개인의 방화에 맥없이 무너진 지하철을 보면서 사후약방문 격이 되겠지만 더 많은 비상구를 마련하고 재난 구조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신간센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지하철은 독가스 테러를 계기로 안전망을 대폭 확충하였다. 전동차 내부는 가연성 물질에서 불연성 자재로 거의 바꾸었으며 지하철 내부는 전원이 끊기더라도 비상 배터리로 30분가량 불을 밝히도록 조치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불이 나자마자 지하철은 암흑 천지고, 문은 열리지 않고, 전동차 내부는 온통 가연성 자재로 뒤덮혀 있다. 선진국처럼 수백도의 온도에서도 불이 붙지 않는 불연성 자재로 전동차를 설계하였다면 오늘과 같은 끔찍한 사고는 충분히 막았을 것이다.
 지하철외에도 극장, 목욕탕, 백화점 등 다중 이용시설을 보면 재난 구조면에서 많은 취약점을 안고 있다. 가연성 건축자재의 과다 사용은 물론 상당수 업소의 출입문이 외길이고 비상계단은 잠겨 있거나 물건을 잔뜩 쌓아두기 일쑤다.
 업소측은 우선 당장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접고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배려해야 할 것이며 당국은 다중업소에 대한 안전점검을 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 스프링 쿨러나 비상소방호스는 작동되는지, 비상구는 제역할을 하고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방화에 있지만 간접적인 원인은 사회가 건강성을 잃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신병을 비관하고 현실에 적응 못하는 일개인이 사회를 원망하며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함께 죽자'는 식의 방화는 그냥 흘려버릴 대목이 아니다.
 우리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정보화사회로 개편되면서 편리성 추구의 이면에는 인간성의 상실이라든지, 이웃과의 대화 단절 등 마음의 비상구를 닫고 사는 이기적 현상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복잡다단하게 얽혀 돌아가는 정보화 사회에서 본인 살아가기도 바쁜지만 그럴수록 여유를 갖고 주위를 살펴보면서 마음의 비상구를 마련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사회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재난 구조 체계의 확립과 더불어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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