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일주일이 가깝도록 아직 우리 사회는 충격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의 내용도 워낙 참담하지만, 이후 들려오는 소식들마다 국민들의 분노와 울분을 돋구고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현장을 방문한 노무현당선자도 말했던 것처럼, 이번 참사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더할 나위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 해 월드컵을 뜨겁게 치러내면서 '아시아의 자랑'임을 자부했던 우리였건만, 그 실체는 앙상한 윤곽만 남은 채 시커멓게 타버린 1079, 1080호 전동차 바로 그것이었다. 대체 몇 명인지조차 모르는 수많은 생명들이 공포 속에서 사라져간 그 전동차들은 우리 사회가 발전의 미명 아래 얼마나 철저히 생명의 소중함을 외면해왔던가를 깨우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지하철은 배연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을 사전에 지적받고도 외면했다. 전국의 전동차들에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기준의 난연성 내장재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들이 타면서 얼마나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발생시키는지 알지 못했고 법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알고 보니 아예 열차차량에 대한 소방안전대책도 전무했다. 또 기관사 한 사람이 수백명 승객을 책임지는 운영 시스템도 유사시 판단착오에 따른 참사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기막힌 걸 찾자면 끝도 없다. 화재발생에 고작 주의운전을 당부한 사령이나 시커먼 연기를 보면서도 전동차를 세우고 지시만 기다린 기관사, 그들의 통화내역은 우리 사회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치명적인 수준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더욱 통탄할 일은, 이 처참한 결과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우리가 모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를 달고 외국에서 달리고 있는 전동차들이 그네들 국가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관련 규정을 충족시킨 결과 안전철의 평가를 받고 있다니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생명 존중과 사람 우선의 가치 대신 효율과 이윤 우선의 원칙 때문에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됐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는 물론 크고 작은 인재성 참화를 그토록 많이 겪고서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장 우선 개발지상주의를 폐기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원가 및 인건비 상승, 추가 비용 부담 등을 피하기 위해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삼아 혹시나의 요행을 바랐던 결과가 이 같은 참사였다.
 이제는 우리도 사람 우선, 생명 존중의 가치관을 발전전략의 기본으로 삼는 인식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아무리 빌딩 키를 높이고 자동차 댓수를 늘려도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발전은 결코 정당한 것이 못된다. 다소 천천히 가더라도, 혹은 좀 돌아가더라도 모두가 함께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궁극적인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며칠 전 정부는 도시철도 안전기준 제정 이전에 제작된 전국 지하철과 수도권 전철 전동차 6천300량의 내장재를 전면 교체키로 했다고 밝혔다. 가슴 아픈 만시지탄이지만 이를 통탄할 시간조차 없다. 서둘러 다른 곳곳도 살피고 필요한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런 참사가 되풀이된다면 떠난 영령들에게 너무 면목이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