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공민왕때 이색(李穡)부자를 비롯 여러충신들이 청주옥에 갇혀 억울하게 곤욕을 당하고 있을때 홍수가 일어나 큰 피해를 주었다. 이때 옥에 갇혀있던 죄수들이 옥사앞에 있던 몇 그루의 은행나무에 올라가 화를 면했다.
 이들 은행나무 중 하나가 천년 고도(古都)인 청주의 나이테를 두른채 청주시 남문로 중앙공원에 우뚝 서 있다. 지방기념물 제 5호 이기도 한 이 은행나무는 고려말쯤 이미 큰나무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수령이 대략 천년 가까이 되며 높이가 30여m에 둘레가 8m쯤 되고 있다.
 은행나무의 잎이 오리발 처럼 생겼다 하여 이 은행나무를 압각수(鴨脚樹)라 부르기도 한다.
 청주 도심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중앙공원엔 압각수와 함께 온갖 수목이 있어 봄꽃이 만개하면 젊은이들이 꽃향기속에 묻혀 공원의 사진사들로 부터 기념사진을 찍고 한여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은행나무나 느티나무 아래 둘러앉아 더위를 씻으며 한담을 나누고 장기를 두는 야외 경로당이었다.
 또 한켠에서는 박포장기판이 펼쳐지고 야바위꾼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등 도시 서민들의 휴식처로서 지난날 우리들의 삶의 궤적이 아직도 찐득하게 배어 있는 곳이다.
 이처럼 중앙공원이 젊은이들로 부터 노인들까지 시민 모두가 찾는 쉼터가 되자 이곳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관리인은 매일 아침이면 자기 키 보다 더 큰 싸리비로 공원의 구석구석을 쓸고 공중변소를 청소하곤 했다.
 그리고 낮이면 공원내를 돌며 풀밭에 들어가는 악동들이나 젊은이들에게 그속에서 빨리 나오라고 큰소리 치고 행여 나무를 겪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나이를 불문코 호통을 치기도 했다.
 또 압각수가 노오란 은행잎을 떨구며 은행알을 드러내면 이곳을 찾는 악동들도 덩달아 신이났다. 악동들은 삼삼오오 몰려 다니며 은행서리에 나선다. 은행을 서리하다가 관리인 할아버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래서 악동들은 중앙공원을 내집처럼 관리하며 무섭게 야단치는 관리인 할아버지를 「호랑이 할아버지」라 불렀다. 은행을 서리하다가 누군가가 「호랑이 할아버지 닷」 하면 똥줄이 빠지게 달아났던 악동들이 이제는 쉰세대가 넘어 중년의 주름살이 깊게 패였을 것이다.
 호랑이 할아버지의 『이놈들』하는 불호령에 중앙공원엔 질서가 있었고 야외 경로당을 찾은 노인들로 부터 젊은이들은 효를 배우며 조금이나마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이같은 중앙공원의 호랑이 할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옛추억을 제천시가 되살려 주고 있다.
 제천시는 건전한 사회분위기 조성과 청소년 선도를 위해 「골목 호랑이 할아버지팀」을 운영키로 했다는 것이다. 활동적이고 지도력과 사명감을 갖춘 노인 52명으로 구성될 「호랑이 할아버지팀」은 뒷골목의 청소는 물론 청소년들의 선도에 앞장서기로 했다는 것이다.
 중앙공원의 호랑이 할아버지에서 제천의 골목 호랑이 할아버지에 이어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 할 「국민 호랑이 할아버지」가 그리운 오늘, 전직 대통령 할아버지들은 왜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 안타까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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