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하늘을 우러러 보면 구국 선열을 대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일제치하에 몸으로, 정신으로 항거했던 선열의 족적과 구국정신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는데다 일제의 찌꺼기를 생활문화에서 말끔히 씻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은 충절의 고장답게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 6인을 배출한 곳이다. 6인이외에도 민족의 스승격인 단재 신채호 선생이라든지,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낸 신규식 선생, 일제에 항거하여 단식절사한 소당 김제환 선생 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후예들은 선열들의 업적을 충분히 기리지 못하고 있다. 우암산 우회도로에 있는 3.1공원에는 민족대표 6분의 동상이 있었는데 이중 정춘수(鄭春洙) 동상은 친일전력으로 일부 시민단체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어 좌대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 좌대를 철거하든지, 그간 사정을 기록한 표석을 세우든지 가부간 결정을 내릴 일이다.
 청원군 북일면 세교리에서 태어난 한봉수(韓鳳洙)의병장은 제천의 유인석(柳麟錫)과 더불어 충북을 대표할만한 의병장이다. 그는 을미사변후 궐기하여 청주지역 일대에서 왜병의 간담을 서늘케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그의 족적을 찾아볼 만한 곳은 청주중앙공원의 송덕비가 유일하다. 송덕비조차도 건립당시 새겼던 의병대장(義兵大將) 문구가 그후에 고친 의병장(義兵將)문구와 겹쳐 보기에 민망하다. 세교리 생가는 찾아볼 길이 없다.
 단재 선생의 묘소와 사당이 있는 청원군 귀래리에는 기념관이 들어서 추모의 정신을 더하고 있으나 아직도 선생의 역사적 무게에 비하여 부족한 느낌이다. 애당초 기념관이 잘못 지어져 유족측과 상당한 마찰을 빚은바 있다. 그후 상당히 보완하여 며칠전에 개관을 하였으나 아직도 전시품, 유품이 미흡한 상태이고 전시실 내부도 흡족한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청주·청원지역 동학의 근거지인 청원군 남일면 신송리 동학 유적도 모두 없어졌다. 신송리는 지형적으로 청주~미원으로 이어지는 분지에 외돌아 있어 동학군이 은신하며 활동을 하던 곳이고 동학의 지역본부격인 대도소(大都所)가 설치되어 있던 곳이다.
 손병희의 나이많은 조카로 충청지역 동학 대접주(大接主)를 지낸 손천민(孫天民)이 신송리 노가지봉 아래에 대도소를 마련하고 동학운동을 펼쳤으나 10년전까지 존재하던 대도소는 흔적도 없이 사리지고 현재는 농경지로 변했다.
 충북의 3.1운동은 장날을 이용하여 집회했던 점과 마을 동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던 횃불시위가 특징인데 각 시군의 장터는 산업화로 하나 둘 없어지고 봉화대도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다.
 모든 유적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훼손의 위기에 있는 유적은 더 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보존해야 한다.괴산지방의 3.1운동을 주도한 동부리 홍명희 생가는 매각의 벼랑에서 일단은 구명됐다. 이 고가는 경술국치후 자결한 홍명희의 부친, 홍범식의 생가이기도 하다. 소설 임꺽정의 산실인 동시 괴산 지역 3.1운동의 본산인 만큼 잘 가꾸어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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