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최용현 변호사·공증인

드루킹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투신 자살한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의원회관 노 원내대표실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2018.07.23. / 뉴시스
드루킹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투신 자살한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의원회관 노 원내대표실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2018.07.23. / 뉴시스

[중부매일 중부시론 최용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그림에 나오는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고,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이상주의자인 플라톤과 현실주의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이상 대 현실은 정치사상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가장 심원한 주제이다. 이상과 현실의 보다 극명한 대조는 16세기 초에 있었다. 1513년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의 초고를 완성하고(출간된 것은 1532년임), 그로부터 3년 뒤 영국의 모어가 이상적인 섬나라 이야기를 담은 '유토피아'를 출간했다. 이 둘에 의한 마키아벨리즘과 유토피아는 이후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상징처럼 되었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제시했다. 소명의식을 가진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사회정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그것을 위한 불굴의 열정을 가져야 하지만, 이와 더불어 주어진 현실적 한계에 대한 균형 잡힌 판단능력과 비록 의도치 않았더라도 그 귀결된 결과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지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이상과 현실의 대조에 대한 베버식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이상과 현실 또는 신념과 책임의 양자의 균형내지 조화라는,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손쉬운 해결책을 내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론은 우리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간다. 플라톤은 최고의 정치인이 되고자 수년간 수련한 철학자는, 오히려 태양(진리)을 목도하고는 현실정치에 참여하기를 기피할 것이라는 역설적 결과에 직면해 혼란에 빠졌다. 마키아벨리는 분열과 내전으로 휩싸인 조국에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분투했지만, 복귀한 피렌체 가문에 의해 고문을 받고 공직에서 쫓겨나 고통스런 말년을 보냈다. 모어는 공직에서 영예롭게 은퇴한 후 철학적?관조적 삶을 살고자 했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의 목을 단두대의 칼날 아래 올렸다. 베버는 진정한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더불어 책임윤리를 가져야 한다고 했지만, 양자의 대립은 결코 해소되지 않은 채 영원히 긴장관계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의를 추구하는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이상과 신념에 비해 현실의 정치는 너무나 완고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은 너무나 비참하다. 그도 인간인지라, 이상과 현실의 긴장 속에서 끊임없이 번민하고 분투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정의에 대한 고집과 불굴의 의지로 그는 다시 일어서 도전해야 한다. 이는 제도권 정치에 진출한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인의 고통스런 숙명일 수밖에 없다. 몽상적 이상가라면 현실에 저주를 퍼부으며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 있고, 여의도의 흔한 의원들 중 한명이라면 현실의 지위와 권력에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지만,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번민하고 분투하는 진보정치인이라면 이 고통스런 숙명을 벗어날 수 없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노회찬 의원이 그 고통스런 숙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진보정치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그에게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드루킹과 관련하여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불명예스런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를 비난하기보다 그를 동정하고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단지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 때문만이 아니다. 강건한 정치인 노회찬이 보여주었던 이상과 정의를 향한 열정에 대한 존경과, 그에 반비례한 궁핍한 삶과 엄중한 책임의식으로 고통 받았을 연약한 인간 노회찬에 대하여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 신념과 책임, 정치인과 인간 사이에 번민했을 그가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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