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이진 진천 서전고 교사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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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개학식과 입학식으로 학교는 몹시 분주했다. 담임이 아닌, 행사 관련 업무가 없었던 나는 여유롭게 새 학교의 낯섦을 만끽했다. 퇴근길, 수석교사 첫 출근을 돌이켜보다 씨익 웃었다. '오, 편한데…?' 하는 생각을 하며.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 편하려고 수석교사 한 건 아닌데…?'

내일부턴 편해지려는 나를 경계해야겠다. 정신 바짝 차리자.

3월 14일. 3월이라 써야할 계획서가 많다. 이런저런 계획서를 쓰느라 책상 앞에만 앉아있으니 마음이 좀 복잡하다. 수업시수가 적어 아이들 만날 기회가 갑자기 줄어든 것도 못내 아쉽다. '아이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 자율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공부하자는 소문을 냈더니, 열여덟 살 소녀 다섯이 눈을 반짝이며 찾아왔다. 위로가 된다.

4월 5일. 지난주 우리학교 신규교사와의 만남에 이어 오늘 2년차 선생님 두 분과 만났다. 책 한권씩 선물로 드리고 이런저런 학교생활 얘기를 나누려는데, 시작도 전에 두 분의 눈물보가 터졌다. 몸보다는 마음이 고단했던 초임시절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초임부터 지금까지 학교에서 동료들과 편하게 내 고민을 나눈 적이 없다. 힘든 아이가 있을 때도, 수업이 잘 안 될 때도 내 무능함을 들킬세라 나를 합리화하고 변명을 늘어놓기 바빴다. 마찬가지로 어려움에 처한 동료가 있어도 쉬이 손을 내밀지 못했다.

젊은 선생님들과의 교류는 나이가 들면서 더 드물었다. 어려운 점은 없는지, 내가 배울 것은 없는지 늘 궁금했지만,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그들과 만나는 것이 나의 일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수석교사의 책무이다.

5월 25일. 수석교사 합격 통보를 받고 자신감이 충만했다. 자격연수를 받기 전까지는. 자격연수를 받으면서는 '내가 과연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가끔씩은 모두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공포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어렴풋이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전문적 학습공동체 운영이다.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한번 해보고 싶기도 했다.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게 아름답게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꾸려가고 싶다.

6월 21일. 성 평등교육 연수에 다녀왔다. 성 평등교육을 넘어 꾸준한 인권교육으로 아이들의 인권감수성을 키워 온 초등사례였다.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서로에게 "야, 장애인아!", "이 게이 같은 놈" 이라고 할 때 그것을 그냥 봐 넘기지 않고 다양한 수업과 일상 대화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욕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한 것. 외모로 서로를 평가하지 않기 위해 교사가 먼저 '스스로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나무라지도 칭찬하지도 않겠다.' 선언하고, 그래서 아이들이 "선생님, 예뻐요!" 했을 때, "칭찬 고마워요, 그러나 선생님은 다른 칭찬 듣고 싶어요."라고 한 일 등. 그리고 아이들의 변화.

연수를 듣고 나오는데 조금 설레었다. 꾸준한 교육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사의 본질을 일깨우는 연수, 새로운 도전을 자극하는 연수, 나를 깨뜨리며 성장케 하는 연수. 수석교사가 되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배울 기회가 많다는 거다. 내가 배운 좋은 것을 선생님들과 나눌 수 있어야겠다.

이진 진천 서전고 교사

7월 20일. 교육공동체 교육과정 평가회와 선진학교 탐방을 끝으로 1학기 나의 임무를 모두 마쳤다. 학교의 큰 그림을 보는 안목이 없어 스스로에게 답답했던 날, 이 일 저 일 벌여놓아 버거웠던 날, 동료교사의 한 마디에 괜히 위축되고 마음이 쓰인 날들이 있었지만, 서툰 나의 걸음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었기를 희망해본다. 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되면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내 자리를 지키겠다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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