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미세먼지로 가득한 청주도심 / 신동빈
미세먼지로 가득한 청주도심 / 신동빈

[중부매일 박상준 칼럼]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산을 걸어 본 사람들은 야간산행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컴컴한 곳에선 온 몸의 감각이 살아난다. 낮과 달리 조용한 숲에선 미세한 벌레소리도 들리고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에 청량감을 묻어있다. 보름달이라도 뜨는 날의 숲길은 몽환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래서 평소 동네 뒷산인 구룡산을 자주 걷는다. 산세가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을 띠고 있어서 '구렁봉'으로 불리는 구룡산은 높이가 165.6m밖에 안되는 아주 낮은 산이다. 하지만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산남동·성화동에 걸쳐 형성돼 예전부터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도심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능선이 부드럽고 길게 뻗어있어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그래서 이슥한 밤에도 주저 없이 찾는다.

산이 도시를 둘러싸고 숲이 도심을 관통하는 청주는 굳이 멀리 안가도 녹음(綠陰)을 즐기며 산책하기 딱 좋은 도시다. 이 때문에 청주는 살만한 도시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주거환경은 '삶의 질'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청주도 예전엔 그랬다. 하지만 흘러간 시절 얘기다. 이제 청주를 친환경도시라고 내세우기가 민망하다.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숲길이 끊어지고 숲이 통째로 사라지는 안타까운 광경을 목격하는 것이 흔해졌다.

청주 율량지구에 이어 동남지구도 개발되면서 인근 주민들이 수시로 산행을 즐기던 등산로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아파트단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기슭 넓은 포도밭과 목가(牧歌)적인 전원풍경은 콘크리트 더미에 묻혔다. 그 옛날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과 청원군 가덕면 한계리를 이어주었던 아름답고 고즈넉한 옛길도 10년째 활용도 못하고 있는 도로와 요양병원 부지로 심하게 훼손됐다. 이뿐만 아니다. 예전엔 구룡산 골짜기 아래에 방죽말 방죽, 장전방죽, 산남방죽, 원흥이방죽이 산재해 두꺼비서식지로 유명했지만 택지개발로 지금은 아예 없어지거나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다.

수익성이 높은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도시의 허파역할을 하는 녹지공간을 파괴하고 있다. 도시공원 민간개발은 전체 면적의 70%를 공원으로 조성해 자치단체에 기부채납하고, 30%는 아파트 등으로 개발해 지방재정을 투입하지 않고도 상당부분을 공원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지자체의 주장이지만 도시의 생태환경이 열악해 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 도심은 공동화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외곽은 끊임없이 개발되면서 산책의 추억이 담긴 도시의 숲이 망가지는 현상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 매봉산, 잠두봉, 새적굴등 시민들이 즐겨 찾던 녹지대(綠地帶)가 점차 축소되고 있다. 민간공원 개발 제안이 이어지는 것은 규제가 대폭 완화돼 수익성을 보장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도심의 산이 훼손되면서 청주는 미세먼지가 더 기승을 부리고 여름철 대기는 훨씬 뜨거워졌다.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청주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6차례의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렸고 전국 16개 시·도 39개 권역 중 세 번째로 미세먼지가 많았다.

환경부가 최근 '2016년도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결과'를 공개하면서 충북의 발암성 물질 배출량이 1천760t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고 발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론 청주권 산업단지 조성등 복합적인 영향으로 풀이되지만 숲이 줄어든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폭염 역시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청주는 확실히 더 뜨거워졌다. 숲 1㏊는 연간 168㎏의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여름 한낮 평균기온을 3~7도가량 낮추는 효과가 있다.

숲을 통해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녹지대로 유입되고 유입된 공기가 잔디나 지피식물로 덮인 녹지대를 통과하면서 기화열에 의한 냉각효과와 수목의 차양기능으로 인해 열이 차단된다. 울트라 슈퍼급 폭염에도 일주일전에 찾은 지리산 백무동 한신골 깊은 계곡이 서늘한 이유다. 그래서 산림청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열섬현상과 함께 도시인들을 괴롭히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올해 1310억 원을 들여 전국에 300여개의 도시 숲을 조성 중이다. 때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청주의 도시정책은 여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도시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울창한 숲이 난개발로 없어진다면 청주가 삶의 질이 높은 도시가 될 수 없다. 태양이 이글거릴 때 진초록 숲 대신 회색빛 아파트 숲이 시야를 가리면 숨이 턱턱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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