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문화재 파괴와 밀반출은 거의 전쟁기간 동안 자행되었다. 그것도 내전이 아닌 외세와의 전쟁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한반도 문화재가 쑥대밭이 된 것은 몽골의 침입과 임진란, 그리고 일제의 강점기 동안이었다. 사찰 문화재의 상당수는 몽골란, 임진란때 불타 없어졌거나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국보 제41호인 청주 용두사지철당간은 용두사(龍頭寺)의 흥망성쇄를 말해준다. 이곳에는 용두사라는 신라말, 고려초의 큰 절이 있었는데 모두 없어지고 철당간만 쓸쓸히 남아 있다. 용두사는 아마도 몽골의 침입때 소실되어 폐사된 것으로 보여진다.
 속리산 법주사의 법당들도 임진란때 모조리 소실되어 중건을 한 것이다. 10여년전, 법주사에서는 전화(戰禍)를 말해주듯 임난당시의 총통(銃筒)이 발견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또 얼마나 많은가. 신라의 석탑이 일본의 정원에 숨어 있고 석가여래좌상 등 수많은 불교문화재가 일본 열도에 산재해 있다. 심지어는 서원경(西原京)당시 청주의 인구,토지대장 등을 적어놓은 「신라촌락문서」가 일본 동대사(東大寺)의 창고인 정창원(正倉院)에서 발견되었다.
 그 유명한 「트로이 유적」은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에 의해 발굴되었다. 터어키에 있는 트로이 유적출토유물은 독일로 옮겨졌고 2차대전 당시 러시아로 먼 여행을 떠났다.
 트로이의 문화상은 그리이스 문화이고 영토는 터어키이며 발굴은 독일인이 했고 현재는 러시아기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이때문에 아직도 4개국이 트로이 유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전쟁의 속성은 두말할 것도 없이 파괴에 있다. 현대식 건물이야 다시 지으면 되지만 유적 유물은 한번 파괴되면 제 모습으로의 복구가 매우 힘들다.
 이라크의 바그다드 박물관은 중동 이슬람권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다. 28개 전시실로 구성돼 있는 이 박물관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에서 이슬람 문명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세계 굴지의 바그다드 박물관이 이번 이라크전으로 상처를 입었는데 더욱 마음 아픈 것은 30만점에 달하는 유물의 상당수가 무정부 상태에서 현지 주민에 의해 약탈당한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성혼례를 보여주는 기원전 3천5백년에 만든 「우루쿠 항아리」와 「나람씬 청동상」도 행방이 묘연해졌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바빌론 문명과 그 흔적들을 이제 어디서 찾아볼 것인가. 유물의 1백% 회수는 불가능한 상태지만 가능한 유실된 유물들을 되찾아 놓는데는 연합군과 이라크가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사실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는 약탈 문화재가 수없이 많다. 고대 에짚트의 거석문화인 「오벨리스크」는 로마, 파리의 광장에서 2천년 동안이나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약탈문화재로 볼 수는 없지만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중국이 대만을 「뜨거운 감자」로 보는 이유중의 하나가 중국본토의 중요 문화재를 대만이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데 있다. 중국내전 당시 모택동에 의해 쫓기던 장개석은 많은 문화재를 챙겨 대만으로 건너갔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판에 그까짓 문화재가 무슨 대수냐고 할런지 모르지만 선조의 슬기가 응축된 문화재는 어찌보면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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