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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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아침뜨락 김순덕] 연신 계속되는 폭염은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 살인적인 더위에 요즘은 인사말이 '더운데 어떻게 지내냐'는 말로 서로의 안부를 챙기게 된다. '더운데 덥게 지내고 있다 '라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대답을 하면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실없이 한번 웃게 만든다. 불볕더위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과 식물들도 힘겨워하고 있다. 축 늘어진 텃밭의 농작물이 뜨거운 대지위에 서 있는 것만도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안쓰럽다. 시간이 되는대로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있지만 하늘에서 주시는 비처럼은 아니어서인지 며칠 전 새로 사다 심은 상추 모종이 다 타 버렸다.

오늘 하루도 폭염에 잘 견뎌준 정원(庭園) 식구들을 대견해하며 저녁 시간에 물을 흠뻑 뿌려주고 바라보면 자식 입에 밥 들어간 듯 흐뭇하다. 어찌 식물뿐이랴. 마당에서 숨을 헐떡이며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린 개와 고양이도 매일매일 폭염과의 전쟁을 힘겹게 치르고 있다. 문득, 사람이라면 등목이라도 해 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물 한 바가지를 등짝에 뿌려주며 무더위를 쫓아주던 모습을 예전에는 심심찮게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생뚱맞은 등목에 대한 향수는 얼마 전 지인의 집에서 퐁퐁퐁 솟던 쌍둥이 샘물로 생각을 끌고 갔다. 어찌나 물이 차던지 발을 몇 분 담그기가 무섭게 들어 올려야 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샘물을 가진 지인이 부러웠다.

생각난 김에 송계 계곡에서 발이나 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수안보를 지나 송계로 들어서니 예쁘게 들어선 찻집 앞에도 자동차들이 꽉 차 있었다. 계곡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염려했던 것만큼 북적대지 않은 것도 폭염 때문인가 보다. 그늘진 곳에 차를 세우고 흐르는 물에 여유롭게 발을 담그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많았다. 폭염이 계곡물도 데웠던 것인지 생각만큼 물이 차갑지 않았다.

주변에는 나무 그늘 밑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책을 보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뜰채로 고기를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물속에 담근 발가락으로 모래도 집어보고 작은 돌멩이도 비벼보지만 심한 물비린내가 나서 오래 앉아있지 못하였다.

송계를 빠져나와 수안보 벚꽃길에 새로 조성되었다는 '족욕 체험장'으로 향했다. 지난 4월에 개장 소식을 듣고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벚나무 가로수길이 만들어주는 그늘을 따라 걷다 보니 바람이 빛바랜 낙엽들을 간간히 흔들어 깨워 몰고 다녔다. 그 모습이 가을을 연상케 하며 계절을 뛰어넘은 듯 묘한 기분이 들었다. 깔끔하게 조성된 족욕탕에 발을 담갔다.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살갗에 매끈하게 감도는 온천수에 발을 담그니 온 몸의 피곤이 사라지는 듯 평화로워졌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온천수라 더울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발을 담그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발로 물장구를 치기도 하고 콧노래도 불러가며 한적함을 즐기는데 엄마와 함께 온 아이가 나를 따라 하듯 텀벙텀벙 물장난을 치다 눈이 마주쳤다. 수줍은 듯 살포시 얼굴을 숨기는 아이의 모습이 천사 같다. 한적한 곳에서 진정한 휴식으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 어디선가 시작된 바람이 솔솔 불어오자 초록나무 이파리가 수다스럽게 팔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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