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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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아침뜨락 김경구] 정말 덥다. 씻고 나와도 금방 등줄기에 송송 땀이 돋는다. 올 여름은 집안일로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잠깐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다. 그게 올 나의 유일한 휴가(?)가 될 거 같다. 오늘도 아침부터 무척 더웠다. 더 자고 싶었지만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어제 냉수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배까지 아파 더 그랬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 배가 고팠지만 입맛이 없어 먹고도 헛헛했다.

그런데 밤에는 왜 그리 뜨거운 커피가 딱 한 모금 먹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럼 훅- 배가 부를 것만 같다. 커피 타오기는 그렇고 해서 은근 아내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박자기, 커피 먹고 싶지 않아?" 반응이 없다. "커피 딱 한 모금만 마시면 좋겠다, 그치?"

아내는 묵묵부답이다. 다시 슬쩍 눈치를 보며 같은 말을 반복해 본다. 그럼 아내는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할 것을 알고 커피를 타온다. 어떨 때는 영혼이 없는 표정으로 커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은근 신경이 쓰여, "자기 늙으면 내가 커피 더 많이 타 줄게." 라고 말한다. 그럼 지금 몸 상태로 봐서 내가 먼저 갈 거 같으니 커피 얻어먹긴 힘들겠단다. 또 내가부터 가야지 안 그럼 나 혼자는 못 산대나 뭐라나 구시렁구시렁 거린다. 커피 한 잔에 좀 과다한 잔소리다. 저녁을 다 먹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아내가 없다. 그때 불쑥 테라스 쪽에서 허연 옷을 입고 얼굴을 쓰윽 들여댄다. 순간 깜짝 놀랐다. "자기야, 여기 되게 시원해. 별도 많고." 별이라는 말에 얼른 테라스로 나갔다. 사는 게 뭐가 바쁜지 올 여름은 테라스에 별로 나온 적이 없다. 처음 이사 와서는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도 보고 가끔은 저녁도 먹고 그랬는데.

남산에 노란 달이 조금 보이더니 점점 솟아올랐다. 보름달에서 살짝 덜 찬 모습이었다. 달 한쪽이 푸르스름한 게 어릴 적 본 익기 직전 탱자 같다. 그 위로는 별들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는 또 생각나는 게 있다. 아주 뜨거운 이 여름보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이다. 이번엔 아내에게 애교(?)까지 떨면서 커피를 부탁했다. 이런 커피 이야기를 하면 다들 내가 직접 타서 마시면 되지 않으냐고 말한다. 나는 사실 20년 넘게 작은 커피숍을 했다가 그만 두었다. 그 전에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정말 커피를 얼마나 탔는지... 내 커피만큼은 누가 타 주는 게 소원일 정도였다. (대신 그 덕에 커피 잔이나 물 잔은 여전히 잘 닦는 선수 급이다. 그래서 가끔 집안의 컵 설거지는 내가 깨지 않고 빠르게 잘 하는 편이다.)

이런 나를 이해하는지 아님 속아주는 건지, 그것도 아님 나의 끝없는 커피 타령이 지겨워 포기한 것인지 아내는 커피를 곧잘 타준다. 요즘처럼 뜨거운 날, 테라스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달도 보고 별도 보고 가끔씩 묻어나는 풀벌레 소리도 함께 하니 참 좋다.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도 참 행복하다. 아이들 어렸을 때 이야기, 우리들 나이 듦의 이야기, 쭉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감사함으로 마무리를 한다.

김경구 아동전문가
김경구 아동전문가

이 무더위에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나도 이 여름 더 뜨겁게 살아야겠다. 그리고 아내한테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자기야, 진짜 자기 늙으면 내가 커피 엄청 많이 타 줄게. 자기 좋아하는 냉커피도 기똥차게 잘 탈 수 있어. 나 커피경력 20년 넘는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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