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과 넥타이를 갖추어 입고 한 여름 불볕 더위를 감당할 적마다, 그리고 통풍되지 않는 검정구두 때문에 고통받을 때마다, 내가 대수롭지 않은 복장문제로 굳이 피곤과 스트레스를 안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달에 하루쯤은 반바지에 슬리퍼로 출근하고, 머리에도 약간의 염색을 하여 날카로와 보인다는 인상을 바꾸고도 싶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생각을 약간만 달리하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헝겊과 가죽으로 만든 껍데기가 아니라, 내게 맡겨진 일에 대한 성실함일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새로 의정에 등단한 한 국회의원의 복장문제를 놓고 시비가 분분하였다. 이미 시들한 주제인지는 모르나 몇 가지 점은 보다 확실히 하고싶어 적는다.
 나는 그가 의정단상에 캐쥬얼차림으로 나선 것이 진실로 일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자유로운 사고에서 출발한 것인지, 혹자의 평가대로 잘 계산된 이벤트였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정책과 강령은 애매하지만 그를 지지하는 것을 모토로 하는 정당이 하나 만들어졌을 때, 그리고 뛰어난 화술로 100분 토론을 진행하는 등 프리랜서정치평론가로 잘나가던(?) 그가 갑자기 심판보기가 짜증이 나서 직접 선수로 뛰겠다고 나타났을 때, 나는 또 하나의 돈키호테가 등장했음을 예감했었다. 지역구 선거기간 내내 몸으로 발로 뛰면서도 넥타이를 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여유로운 국회 본회의장에 이르러, 그것도 대국민선서를 하는 마당인데, 그는 갑자기 나이에도 걸맞지 않는 캐쥬얼 차림을 고집하였고, 그 때 나는 나의 예상이 들어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현 노무현대통령이 청문회의 돈키호테로 일약 명성을 떨쳤듯이 정치인들이 자기 자신의 언행을 이슈화하여 성공한 사례가 한 두 번이 아님은 물론이다. 만약 이 문제가 이슈화하지 않았다면 그가 다른 국회의원들로부터 약간의 야유를 받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 문제는 잠깐의 해프닝으로 정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넓은 범위의 파장을 갖고, 사회저간에 격렬한 시비를 불러왔고, 그러한 '이슈화'가 그 행동의 목표라면 그는 이미 목표를 초과달성한 셈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국회의원의 행동거지 하나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은 크다. 더구나 현재까지의 기본적 룰과 관행을 깨는 돌출행동은 필부들의 관심을 크게 끈다는 점에서, 얼마든지 재확산될 가능성이 많다.
 문제는 그 행동이 사회저간에 순기능으로 작용하기는커녕 계층간 혹은 세대간의 골을 재확인하여 상대와의 타협과 양보를 체념하게 하는 쪽으로 발휘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방 이후 우리가 얼마간이나마 이룩해놓았던 사회적 공약수 혹은 '관행'들에 대한 신뢰가 손상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혹자는 묻는다. 국회에서 꼭 양복입어야 하는 법이 있느냐고, 혹은 양복을 입어야만 정치를 잘하는 것이냐고 말이다. 물론 그러한 법은 하위법에서 조차 찾아볼 수 없고, 단순히 작업상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양복은 도무지 불편하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되묻고 싶다. 아버지 앞에서 맞담배 피우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혹은 한 여름 더위가 불편하다 하여 웃통벗고 출근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부친 앞에서 매사에 조심하고 일정한 복색을 갖추어 사람을 대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수천년 동안 이어온 아름다운 전통이고, 아직까지는 함부로 파괴할 수 없는 일정한 관행이다. 그가 진실로 지역구민과 국민을 섬기고, 그들을 대표한다면 그는 최소한의 복장을 갖추어 입고 의정단상에 올랐어야 했다.
 관행은 말 그대로 사람들 사이의 일정한 습관이고, 생활규범이다. 만약 관행이 거듭되어 법적 확신에까지 이르게되면 관습법으로 모습을 바꾸어 사람들 사이에 강제력을 갖게 된다. 영미법계의 많은 나라들이 아직도 관습법에 의존하고 있지만, 나는 그들의 법률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법으로 만사를 규율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부분을 관행에 의존하게 되고, 타인도 그러한 관행에 따를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생활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한 관행이 전래(傳來)된 것이라는 이유로 혹은 다소의 주관적인 불편함 때문에 아무런 제재없이 파괴된다면 참으로 무서운 결과가 벌어질 수도 있다. 사이버공간이라는 이 시대의 강력한 의사소통구조를 독점하다시피 한 반바지세대가 그 관행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에게는 그리 짧지 않은 60여년의 대의정치 경험을 갖고 있고, 그간 많은 실패와 부작용의 역정을 거치는 가운데 형성된 정치관행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회의원이 국민과 지역구의 대표로서 갖추어야 하는 일정한 격조와 품위이다. 국회 내에서 의원들 사이에 몸싸움과 욕설이 난무한다 하여 국민의 대표라는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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