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겨울, 필자는 눈 쌓인 블라디보스토크의 언덕을 힘겹게 걸어 올라갔다. 고려인들이 모여 살던 '카레이 스카야(고려인의 거리)'와 서울인들이 거주하던 '셰울 스카야(서울인의 거리)'를 답사하던 중이었다.
 시베리아 칼바람과 눈보라를 헤치고 한국산 트럭이 눈 언덕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트럭에는 한국산 라면이 실려 있다. 고향 친구를 만났다는 기쁨과 함께 우리의 제품을 싣고 시베리아 벌판을 누비는 그 상사 직원에게 어떤 경외감마져 느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찍 시베리아로 진출하여 우리 제품을 팔고 있었다. 그는 서툰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라면을 팔았다. 비록 가방끈이 짧다 해도, 애국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해도 그는 분명히 행동하는 애국자였다.
 입만 열면 애국 애족이요, 구국의 등불처럼 떠들어 대는 정치권 인사보다 시베리아의 라면 장수가 훨씬 더 강직한 애국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애국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침이 마르도록 애국을 부르짖으면서 결정적인 순간엔 꼬리를 내리는 비겁한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요즘 TV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무인시대' 또한 그렇다. 고려제국의 앞날을 위해 구국적 결단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문신(文臣)을 쓸어내고 정권을 잡은 무인들은 그들의 집합소인 도방(都房), 중방(重房)에서 난장판 정치실험을 무려 100년이나 계속하였다.
 정중부(鄭仲夫), 이의방(李義方), 이고(李高), 경대승(慶大升), 이의민(李義旼), 최충헌(崔忠獻) 등으로 이어지는 무인시대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임금을 마음대로 폐하고 옹립하고, 사병집단이 대결하고, 왕의 사저를 차지하고, 세금을 제멋대로 매기고, 심지어 왕의 애첩까지 넘보았다.
 무인들로서 행정력의 한계를 느끼자 문극겸(文克謙), 한문준(韓文俊) 등 문신과 연줄을 댔지만 그 고리도 오래가지 못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5.16과 12.12사태로 얼룩졌던 격동의 현대사를 보면 역사의 교훈이 얼마나 뼈져리게 체감되는 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재산이 항간의 화제다. 1천8백91억원의 추징금을 내야하는 그가 제시한 통장의 잔고는 불과 29만원이었다. 평소 통이 크고 호화생활을 영위해온 것으로 알려진 그의 행적으로 보아서 전혀 납득이 안가는 행위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엄청난 재산을 일가 친척 명의로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성년자인 손자 명의로 된 재산만도 수십억원에 이르고 이외에도 일가의 재산을 합치면 2백40억원대에 달한다. 앞으로 더 조사를 하면 추가로 은익 재산이 드러날 수도 있다.
 사회정의를 구현한다며 비중있는 정치인들을 가두고 사회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그는 앞에 내세운 명분과는 달리 뒤꽁무니로 여러 기업체에서 돈을 받아 챙기기에 급급했다. 겉다르고 속다른 사람이 어디 그 뿐이겠는가.
 정치인의 이러한 이중적 속성앞에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환멸과 배신감이 깊어졌고 더나아가 정치 허무주의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의 호화생활과 29만원의 재산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실로 난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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