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노무현대통령과 청와대 만찬을 가진 여야 3당 대표들의 룸살롱 뒤풀이 때문에 가뜩이나 뒤숭숭한 나라가 더 소란스럽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지난해 말만 해도 올해 경제성장률 5%대를 낙관했었지만 최근 3%대 추락은 물론 최악의 경우 그 이하도 각오해야 한다는 비관적 예측이 나오고 있다. 신용불량자 3백만명 시대, 카드빚에 쫓긴 이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전국에서 목숨을 내던지고 있다. 여기에 전국공무원노조 파업,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추진에 따른 교육계 충돌 등 잇단 사안들로 인해 국민들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시점에 터진 룸살롱 뒤풀이는 가히 임계점 근처까지 간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에 기름을 쏟아부은 격이다. 때도 모르고, 국민들의 아픔도 모른 채 청산돼야 할 정치구태를 되풀이하는 소위 정계 거물들에 대한 쓰라린 배신감에 국민들이 치를 떨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뒤풀이 자리는 김종필 자민련총재의 ‘낭만정치’제안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낮에는 싸우더라도 밤에는 술도 한 잔하고 흉금을 터놓는 옛날의 정치문화를 되살리자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핏대 올리고 드잡이만 하던 여야 대표들이 모처럼 넥타이 풀고 편하게 마음을 나누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매일 국가지대사만 고민하는 대통령이기에 더욱 휴가가 필요한 것처럼, 정치적 견해차를 첨예하게 드러내는 진영일수록 흉금을 터놓는 자리는 더욱 권장돼야 한다.
 하지만 소위 한국정치사의 산 증인이라는 정치 9단 혹은 집권여당 및 거대야당 대표라는 이들의 판단은 실로 실망스러웠다. 하룻밤 술값이 7백만원에 달하는 고급 룸살롱, 고급 양주에 폭탄주, 게다가 과거 정권실세들이 애용했다는 일명 ‘황태자 클럽’이라니, 민생현안을 외면한 채 정략적 술수와 음험한 거래만이 횡행하던 과거 정치의 구악들을 일거에 환기시키는 온갖 요소들이 총출동한 양상이다.
 그들은 먹고 살 대책이 묘연한 채 하릴없이 로또복권에나 미래를 걸 수밖에 없는 수많은 국민들 처지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오죽하면 고작 이런 판단력을 지닌 이들을 청와대에 불러놓고 국가운영을 논의한 노무현대통령이 차라리 안쓰러워 보일 지경일까.
 국민들의 비난이 들끓자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22일 시기와 장소의 부적절성을 들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며 국민들에게 사과를 구했다. 또한 정대철대표는 23일 정책위의장 등과 함께 노사정위 사무실을 찾는 등 간만에 민생행보를 보이며 사태를 서둘러 진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자민련을 비롯해서 물의를 빚었던 이들이 자신들의 행태에 비난을 퍼부은 국민들의 뜻을 진정 이해하고 깊이 유념하게 됐는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지난 밤의 룸살롱은 여야 지도자가 신뢰와 우의를 다지는 자리였고, 잃어버린 정치권의 낭만을 찾는 자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다지는 일이며, 자신들이 내팽개친 의무를 되찾는 일이다. 또한 차제에 여성접대부를 두고 양주로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는 저급한 밤의 정치문화 자체를 청산하려는 의지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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