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영의 수필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습니다. / 클립아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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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태울 것 같은 폭염은 오늘도 맹위를 떨친다. 땡볕, 무더위, 폭염이란 말은 어제 일이다. 찜통더위, 최악의 폭염, 초열대야, 기상 관측 사상 최고치, 온열 환자 급증. 매일 높아가는 역대 최고급 폭염을 피하는 사람들 형태도 다양하다. 젊은이들은 볼거리와 맛,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곳을 찾고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은 노인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활동하기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는 그곳에 친구끼리, 부부와 같이 와서 하루를 보내고 가는 피서지가 된 셈이다. 정보를 알고 전철을 탈 수 있는 그들은 그래도 더위로부터 안전하다. 바람도 들어오지 않는 쪽방촌 사람들 삶을 접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밤에는 갈 수 없는 폭염 쉼터 허점도 드러나고 전기료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아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 아동센터도 있다고 한다. 돈의 양극화, 삶의 이면이 무더위에 그대로 드러난다.

집 가까운 곳에 볼일이 있어 맨발에 샌들을 신고 나갔다. 얼굴은 양산으로 그늘을 만들었지만 발등은 그대로 직사광선을 받았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살이 타는 듯 아팠다. 도로 위에서 내 발은 잘 타고 있는 불 속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활동하면서 몸으로 느끼는 폭염은 온도로 가늠할 수 없다.

올 여름 내 삶도 폭염만큼 뜨겁다. 세 번째 수필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11년 두 번째 수필집 이후 7년 만이다. '꼬리로 말하다' 출간할 때 시어머니가 위독하셨다. 어머니 병상 곁 간이의자에서 퇴고하고 간호했다. 약력에 들어갈 사진을 보여드리니 늙어 보인다고 싫어하셨다. 사진은 바꾸지 않았다. 핑계 같지만 여유도 없었고 고집도 있었다. 그때까지 내 삶은 평온했고 때로는 자만했으며 당당했다.

세 번째 수필집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글이다. 그래서 이별 이야기가 많다. 나를 사랑하고 버팀목이 되어준 양가 부모님과 가까운 친척 어른들 모두 돌아가셨다. 자식 같던 반려견도 제 수명을 다하고 떠났다. 지난 7년은 내 삶에서 이별하는 기간이었고 새로운 변화였다. 연민과 후회와 애정이 글 속으로 스며들었다. 마음 아파서 글 썼고, 글을 쓰면서 이해했으며 상처가 치유됐다. 장례 기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아 야속하더니 글 쓰면서 눈물샘이 터졌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내 글에는 간이 없다. 그래서 맛이 없다. 읽기가 거북할 때도 있다. 익숙한 맛의 갈증을 배제했다. 국수꼬리가 생각난다. 여름철 별미 국수를 만들기 위해 홍두깨 미는 엄마 손이 바빴다. 사각사각 국수 써는 소리는 듣기도 좋았다. 기다리면 썰고 남은 국수꼬리가 내게 온다. 모양도 볼품없고 납작하여 구우면 재까지 붙어 있었다. 끝은 타서 쓰고 잘 구워지면 부서지고 가끔은 덜 익기도 했지만 씹을수록 고소했다. 첫맛은 없지만 끝 맛이 좋아 오래 남는 글, 평범한 소재를 담백하게 풀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호흡이 일정하지 못해 도드라졌다. 알면서도 수정하지 않았다. 내 글 같지 않았다. 개성 있게 쓰기, 현재 감정에 이끌리지 않기, 나이 들지 않게 쓰기, 글 쓰면서 화두처럼 곁에 두었던 말이다.

원고 분량과 소재도 고민이 많았다. 수필 분량을 염두에 두면 생각이 자유롭지 못했고 분량이 늘면 설명이 되었다. 청탁받은 글은 주제에 끌려 소재가 신선하지 못했다. 글이 짧으면 미니스커트 같고 길면 롱스커트 같은데 유행과 장소와 취향과 연령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다양한 독자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할 때 윤오영 선생님 글에서 답을 얻었다.

<'절실'이란 두 자를 알면 생활이요,'진솔'이란 두 자를 알면 글이다. 눈물이 그 속에 있고, 진리가 또한 그 속에 있다. 거짓 없는 눈물과 웃음 이것이 참다운 인생이다. 인생의 에누리 없는 고백, 이것이 곧 글이다.>

나는 수필은 삶이고 삶은 회전문이라고 생각한다. 회전문은 한 번에 나갈 수 없다. 제 자리로 오기까지 밀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하는데, 네 개 날개가 함께 돌아야 가능하다. 수필도 나로부터 시작하지만 글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 삶이 어울려 있다. 보고 느끼고 경험에서 얻은 사유들이 회전문 처럼 들어오고 밀어내며 글이 되었다.

절기로 입추가 지났다. 하늘은 높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들린다. 조심하고 기다리면 온도는 내려갈 것이다. 그러나 글 쓰는 내 삶의 온도는 언제나 높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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