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8일 충북 청주 공군사관학교 안중근홀에서 열린 '66기 졸업·학위 수여식'에서 졸업 생도들이 초청인사들과 축하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여생도 13명을 포함한 총 136명의 생도가 4년간 강도 높은 교육과 훈련을 마치고 정예 공군 장교로 거듭났다. 2018.03.08 / 뉴시스
8일 충북 청주 공군사관학교 안중근홀에서 열린 '66기 졸업·학위 수여식'에서 졸업 생도들이 초청인사들과 축하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여생도 13명을 포함한 총 136명의 생도가 4년간 강도 높은 교육과 훈련을 마치고 정예 공군 장교로 거듭났다. 2018.03.08 / 뉴시스

[중부매일 메아리 박상준] 어릴 적부터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이었던 소녀가 있다. 동네 언덕에서 커다란 새처럼 생긴 비행기를 처음 보던 날,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일제강점기의 질곡(桎梏)속에서도 소녀는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다치가와 비행학교를 다니며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택시 운전까지 했다. 먼 훗날 여성비행사로서 금의환향(錦衣還鄕)했지만 비행도중 추락사고로 33세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시대를 앞선 신여성 박경원의 일대기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2005년에 개봉된 영화 '청연(靑燕/푸른제비)'은 그녀가 탔던 비행기 이름이기도 하다.

청주 공군사관학교내 공군박물관 1층 공군태동관에는 여성비행사의 발자취가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다. '청연'의 주인공 박경원과 우리나라 첫 여류비행사인 권기옥, 해방이후 여자 공군 장교를 양성했던 김포기지 여자항공대 1기 수료생이었던 김경오 대위의 조종복과 사진도 걸려있다. 특히 권기옥은 1925년 중국운남항공학교 1기 졸업생으로 중국공군에서 활약했던 전투기 조종사다. 그는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조선총독부를 폭파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할만 큼 투철한 애국지사로 해방 후 공군창설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여성들의 공사입학을 제한해 파일럿은 여성에게 금단의 영역이었다. 사관학교는 전투지휘관 위주의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선발을 금지해왔다. 권기옥이 70년 전 하늘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제도다. 이를 깬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지난 1997년 공사에서 여생도에게 문호를 개방하도록 해 그해 20명이 입학했다. 그러나 처음엔 조종사보다 관제요원, 기상요원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뽑았다. 이 당시에도 여자생도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다. 주말에 외출을 다녀온 여자생도가 스포츠형으로 이발하고 귀영하자 훈육요원들은 회의를 통해 짧은 단발로 하거나 머리 망을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짧은 머리가 생도에게 적합하지만 여성은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규정에 명시된 것이다. 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차나 다과류를 담당하는) 의전담당에 여군이라고 명시해 부서별로 차출했다. 심지어 성적이 수석인 여자 생도에게 2등상인 국무총리상을 주려다가 여성 차별 논란이 일자 다시 1등상인 대통령상으로 정정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군의 뿌리 깊은 남성 중심주의 문화 때문이다. 불과 4년 전 얘기다. 이젠 군대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여군은 전술항공통제반(TACP) 파견근무에서 제외됐지만, 지금은 갈 수 있고, 전투기종도 남성과 똑같이 배속 받을 수 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공군사관학교 올해 여성 사관생도 선발 경쟁률이 처음으로 101.7대1을 넘었다. 역대 최고다. 이 때문에 공사 입학 정원의 10% 수준인 여성 생도 선발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전투기조종사는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여성에겐 쉽지 않지만 여성의 도전이 급증했다는 것은 직업적 성(性) 장벽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있는 세태를 반영한다. 하긴 권기옥, 박경원, 김경오등 일제강점시대에 활약했던 여성비행사들을 보면 능력이 장애가 된 것이 아니라 폐쇄된 사회적 인식이 장애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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