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100가마씩 가래떡 뽑던 시절 돈 세다 잠들었죠"
"쌀 100가마씩 가래떡 뽑던 시절 돈 세다 잠들었죠"
  • 김미정 기자
  • 승인 2018.08.12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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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최고 가게] 8. Since 1964 음성 '문화방앗간'
1964년 문을 연 '문화방앗간'의 김진규(67)·김유숙(65) 부부가 54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가게 앞에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웃고 있다. 음성군청 맞은편에 위치한 문화방앗간은 대물림 가게이자, 음성에서 가장 오래된 방앗간이다. /김용수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돈 세다가 잠든 적도 많았어요. 그날 번 돈을 다 못 세서…. 장사가 잘 됐어요. 10년 전만 해도 바빴어요."

충북 음성군 음성읍 문화동 '문화방앗간' 김유숙(65) 사장의 얼굴은 분홍빛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분주히 손을 움직인데다가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까지 더해져 얼굴에 땀이 마를 새가 없었다.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이 간간이 볼을 타고 떨어졌다. 20평의 가게에는 선풍기 한 대가 천천히 돌아갈뿐이다. 

'문화방앗간'은 음성에서 가장 오래된 방앗간이다. 올해로 54년 됐다. 고추가루를 빻고 참기름·들기름을 짜고, 설·추석 명절에는 쌀도 빻고 가래떡도 뽑는다.

"기름 다 짜서 이름 써붙여놓은 병 100개가 매일 가게 절반을  채웠었죠."

하루에 들기름을 많이 짤 때에는 정종 술병 큰 사이즈로 100병을 했단다. 깨 10가마니 분량이다. 고춧가루도 많이 작업할 때에는 하루에 1천근 가량을 빻았단다.

"설에 가래떡 할 때에는 명절 한 번 쇠고 나면 100가마씩 했으니까…"
 

54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화방앗간' 김유숙 사장이 고춧가루를 빻고 있다. 일이 많을 때에는 하루에 1천근 가량씩 고추를 빻았다. / 김용수

김유숙 사장은 호황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20년 전 얘기"라면서도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의 옆에는 최근 수술해 회복중인 남편 김진규(67) 사장이 휠체어 위에서 지키고 있다. 부부는 같이 일한다. 문화방앗간은 2대 대물림 가게다. 김진규 사장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다가 1991년 며느리인 김유숙 사장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김진규 사장이 13살이던 1964년, 지금의 자리에서 문을 열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부모님 몰래 가게 돈을 꺼내서 이쪽 주머니, 이쪽 주머니에 넣고 나가 친구들 빵 사주고 새우깡 사주고 그랬어요."(김진규)

문화방앗간은 국수 뽑는 가게로 시작했다. 이후 방앗간을 겸했다.

"당시에는 사방공사를 하면 일당을 밀가루로 줘서 그걸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어요. 국수가게가 잘 됐었죠."

국수가게의 하루는 고단했다. 새벽 3시반~4시에 일어나 20㎏짜리 밀가루 4포대를 국수를 반죽해 면발을 뽑아놓고 아침밥을 먹은뒤 다시 2포대, 2포대 등 하루에 총 8포씩 국수를 뽑아 그날그날 다 팔았다. 쉬는 날도 없었다. 김유숙 사장은 1976년 24살에 시집와서 7년간 하다가 국수가 대중화(공장화)되면서 국수를 접고 방앗간에 올인했다.

"어떨 때에는 너무 바빠서 돈도 싫다, 잠이나 자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어요."
 

54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화방앗간' 김유숙 사장이 고춧가루를 빻고 있다. 일이 많을 때에는 하루에 1천근 가량씩 고추를 빻았단다. / 김용수

가게에는 15대의 기계가 자리를 틀고 있다. 1대때부터 사용해 50년은 족히 된 기계들도 있다. 기름 짜는 기름틀, 콩 빻는 기계는 반세기 넘게 가게와 함께해왔다. 부속품을 더이상 구하지 못해 가동을 못할뿐이다. 콩 빻는 기계는 지금은 도토리 빻는 기계로 쓰고 있다.

"기름틀은 50년 가량 됐는데 깨를 갈아서 수증기로 찐 뒤 기름을 짜는 기계에요. 기름 1말을 한다고 할 때 1시간이 걸려요. 요즘은 깨를 볶아서 기름을 짜는데 40분이면 돼요."

가게를 운영해오면서 가장 기분이 좋았을 때에는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을 들을 때 라고 했다.

"자랑할 건 아니지만, 우리집 기름은 마침맞게 볶아서 맛있다고, '오래된 손'이라 그런 것 같다고들 해요. 가래떡도 우리집에서 하면 질기거나 딱딱해지지 않고 간도 딱 맞다고…."

경력에서 우러나온 손맛에다가 좋은 재료가 한몫했다. 기름 한 방울이라도 정직하게 짜자고 생각해왔다.

"옛날에는 직접 농사지은 쌀로 떡을 했었어요. 지금은 농사를 안 지어서 음성쌀로 해요. 떡은 물, 소금, 떡 빼는 방식 등이 다 맞아야 해요."

문화방앗간의 명의는 김유숙 사장 앞으로 돼있다. 95년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91년 며느리 앞으로 주신 것이다. 시어머니는 2007년에 세상을 떠났다.

"결혼하고 10년쯤 됐을 때인데, 이이랑 싸우고 나서 시아버지한테 "청주로 나가겠다"고 말을 하려고 찾아갔는데 아버님이 대뜸 밥상을 차려오신 거예요. "밥 못 먹었을텐데 밥부터 먹어" 하시는데 감동을 받았어요. 집 나가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그때 받은 감동으로 여태까지 살고 있는 거예요."


 

음성군에서 가장 오래된 방앗간인 '문화방앗간' 김진규·김유숙 부부가 30년 넘게 사용해온 기름 짜는 기계를 청소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게에는 50년 넘게 사용해온 기름 짜는 기계와 콩 빻는 기계가 있다. /김용수

김진규 사장은 지역에서 '동네의 아들'로 통한다. 수십년 전부터 동네 어르신들의 각종 심부름을 하며 챙겨왔기 때문이다.

"시골에 혼자 사시는 노인양반들이 배 아프다고 약 좀 사다 달라고 하시면 사다드리고 그랬죠. '동네의 아들'이었어요."(김진규)

지금도 동네 어르신들이 종종 방앗간에 찾아와 하루종일 이야기를 하다가 가곤 한다. '과거'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현재'도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미래'는 걱정이 앞선다.

"가게를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가족들에게 주고 싶은데 다 안한대요. 가슴이 아프죠. 농업인 후계자 제도처럼 상인 후계자 제도도 있으면 좋겠어요."


 

음성에서 가장 오래된 방앗간을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김진규·김유숙 부부가 호황기를 누렸던 세월을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용수

김유숙 사장에게 '문화방앗간'은 '남편 같은 존재'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그러면서도 고마운 존재 라고 했다.

"문화방앗간은 제게 '남편' 같은 존재죠. 평생 의지해서 살아왔고, 일하는 동업자이면서 가족이고, 싸우면서도 또 잘 지내고, 그만두고 싶다가도 계속 살게 되는 사이랄까요."

바라는 것은 소박했다.

"건강해서 이 가게를 80세까지만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주변 상가에 70~80 되신 분들이 많은데 가게 문닫고 쉴 수 있게 여행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어요. 지자체에서 이분들 돌아가시기 전에 하루라도 쉬게 해드리면 좋겠습니다."

54년간 지역민과 동고동락해온 '문화방앗간'이 다시 북적댈 날을 기약하며, 김유숙 사장의 얼굴에서 굵은 땀이 또 한 방울 떨어진다.

음성에서 가장 오래된 방앗간을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김진규·김유숙 부부가 호황기를 누렸던 세월을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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