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하류노인
한국의 하류노인
  • 박상준 기자
  • 승인 2018.08.19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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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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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메아리 박상준] 일본 도심의 대형잡화점이 유난히 붐비는 날이 있다. 매월 짝수 달 15일이다. 이날은 노인들이 주로 쓰는 의료 및 건강 용품 매출이 평소보다 50퍼센트 이상 급증하고, 애완동물 코너도 판매량이 30퍼센트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이날이 대목인 것은 연금이 지급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본 노년층은 대체로 부유했다. 버블 시기에 많은 돈을 벌었고, 검소한 소비로 부를 축적했다. 1천500조엔에 달하는 개인금융자산의 80퍼센트는 50세 이상이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일본 노인들의 삶도 바뀌었다. 모아둔 돈을 다 써버렸는데도 여생이 남은 노인들이 파산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연금 수급액과 저축액이 적고, 질병 및 사고 등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빈곤 생활을 강요받는 노인을 하류(下流)노인이라고 부른다.

일본 뿐 아니다. 미국도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노인들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전체 파산에서 노인층(65세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1년 2.1%였으나 2016년에는 12.2%로 6배가 됐다. 미국 싱크탱크인 도시문제연구소가 분석한 하류노인으로 전락한 배경은 두 가지다. 과도한 주택담보대출 그리고 취업난 때문에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캥거루족 자녀들의 학자금대출 부담 때문이다. 평생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빚만 남긴다.

하지만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하류노인'문제가 심각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가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1만299명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 30.9%가 일을 하고 있었다. 용돈(11.5%)을 벌거나 건강 유지(6%)를 위한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 생계비를 마련(73%)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2014년 7월에 소득 하위 65세 이상 노인 70%에 월 최대 20만 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제도가 시행되는 등 공적 노후소득 지원을 강화하면서 생계형 노동 비율이 낮아지긴 했다. 하지만 고령인구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는 현실에서 노인 셋 중에 한명은 먹고살기 위해 일터에 나가는 모습에서 안정된 노후를 기대할 수 없다. 인생의 황혼을 안락하게 보내야 할 노인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나마 노후버팀목이었던 국민연금도 손질한다고 한다. 현행 9%인 보험료를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의무가입 연령(60세)과 수급 연령(65세)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안이 제시됐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편 안에 민심이 들끓고 있다. '노후난민, 하류 노인, 노인 파산'이라는 절망적인 단어가 나오는 이유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하류노인에게는 세 가지가 없다. 수입이 거의 없고, 저축해둔 충분한 돈이 없으며 의지할 사람이 없다. 이런 고령자는 자력으로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기도 힘들다. 그래서 질병과 사고, 가족 문제나 간병 문제, 나아가 범죄와 같은 여러 위험 요인에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대한민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끌어올린 주역인 6070세대가 일터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여건에서 문재인 정부가 주창하는 '삶의 질' 향상은 공허한 구호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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