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대전시는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을 잇는 중앙로를 축으로 대전시민의 옛 추억과 향수어린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는 탐방로 조성사업을 추진한다고 10일 밝혔다. 그림은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국가등록문화재 제19호)을 근대문화탐방로로 조성하는 계획이 담긴 구상도. 2017.05.10. / 뉴시스
대전시는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을 잇는 중앙로를 축으로 대전시민의 옛 추억과 향수어린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는 탐방로 조성사업을 추진한다고 10일 밝혔다. 그림은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국가등록문화재 제19호)을 근대문화탐방로로 조성하는 계획이 담긴 구상도. 2017.05.10. / 뉴시스

[중부매일 기고 신상구]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박용갑 대전 중구청장의 공약중 필자의 관심과 흥미를 가장 많이 끈 것은 옛 충남도청 뒷길에 '독립운동가의 거리'를 조성하는 것이다. 허태정 대전시장이 공약한 중앙로 근대역사문화거리 조성, 황인호 동구청장이 공약한 제 1·2 호국철도박물관 유치, 호국역사공원 조성 등도 민족사학자인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일제강점기에 백범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이 군사 강국이나 경제 강국보다 문화국가로 발전하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이다. 그런데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대전지역 후보자들은 대부분 표를 의식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도시재생과 원도심 활성화, 4차산업혁명특별시 완성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전의 대표적인 역사 인물은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이다. 그는 1880년 대전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국내외에서 목숨을 걸고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10년 형을 선고받고 1936년 러시아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단재는 무장 투쟁론자이면서도 민족사 정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조선사연구초', '조선혁명선언문', '조선 상고사'등 명저를 남겨 민족사학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또 언론인, 작가로도 활약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식민사학자인 권희영은 단재를 '또라이' 또는 정신병자로 매도했다. 그러나 충청권의 언론과 학계는 침묵했다. 단재 추모사업도 대전보다는 청주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한암당(寒闇堂) 이유립 선생은 1907년 평북 삭주에서 태어나 일평생 2대에 걸쳐 항일독립운동을 하고, 민족사학 연구에 정진했다. 그는 정통국사 광복운동을 전개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멸실된 한국사를 바로 세우고 정립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그는 1948년 월남하여 대전 정동과 은행동에서 30여 년간 거주하면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선비정신을 잃지 않고 올곧게 살면서 '대배달민족사' 5권을 발간하여 이암, 이맥, 이기, 계연수, 신채호, 정인보로 이어져 온 한국선도와 민족사학의 맥을 잇고, 1983년에 '환단고기' 배달의숙본을 처음으로 공개해 역사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강화도 마니산에 개천각을 세워 성역화하고 매년 2회 이상 제천행사를 하여 나라와 겨레 사랑의 전통을 수립했다. 우인(雨人) 송지영(宋志英)은 이유립 선생을 "독립운동가로 국사 광복군으로 초지일관한 진정한 지사"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유립 선생은 지금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서재인 한암당(寒闇堂)은 방치되어 흉물로 전락한지 오래되었으며, 향토지에도 거의 언급이 없어 너무나 안타깝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대전 김태원'(金泰源) 유족이 '평북 김태원'(金泰源)의 독립운동 행적을 가로채 가짜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행세해 대전 시민들을 분노케 한 적이 있다. 광복 73주년을 맞아 지금 옛 충남도청 뒷길에 조성 중에 있는 '독립운동가의 거리' 에 단재 선생은 물론 이유립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반영하고 재조명하여 향토교육 자료로 활용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애국심과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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