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청주지국장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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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세상의 눈 김동우] 제사 때 무엇보다 먼저 지방(紙榜)을 쓴다. 종이로 만든 신주(神主) 말이다. 가풍이 있는 집안은 지금도 먹을 갈아 붓으로 지방을 직접 한자로 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사 세태도 바뀌어 요즘에는 붓 대신 다른 필기도구로 일반 종이에 쓴다. 지방은 돌아가신 조상의 벼슬과 이름을 쓰는 종이다. 보통 아버지의 경우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어머니는 '현비유인00씨(顯?孺人00氏)'라 적는다. '顯"은 정성껏 차린 제사에 조상의 신이 나타나 달라는 뜻이다. '考'는 제사 주체와의 관계를 즉 아버지를, '學生'은 고인의 벼슬 직위 즉 품계를, '府君'은 남성을, '神位'는 영혼의 자리를 말한다. '?'는 어머니, '孺人'은 고인의 벼슬을, '00氏'는 본관과 성(예:慶州金氏)이다.

'학생'은 성균관 등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예비관리를 말한다. 벼슬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신분이다. 조선시대 최하위 벼슬자리는 '참봉(參奉)'이다. '학생'은 위계서열상 '참봉'의 다음 격이다. '유인'은 원래 '종구품'과 '정구품'의 부인을 가리키는 벼슬이다. 하지만 '학생'의 부인이 죽으면 '유인'이란 신분을 얻는다. 남편 벼슬에 따라 정경부인(貞敬夫人:정일품, 종일품),숙부인(淑夫人:정삼품 당상관) 등의 호칭을 지방에 썼다. 정이품을 지낸 사람의 지방은 '현고정이품부군신위', 그 부인 지방은 '현비정부인000씨신위'다. 제사 때 지방을 보면 대부분 '학생과 유인'으로 적혀 있다. 알고 보면 벼슬한 조상이 아닌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죽은 자에 대한 예우 때문이다. 죽은 자 신분을 한 등급 올리는 신분의 격상이다. 벼슬을 못 했다하더라도 누구나 '학생부군신위'이고, '유인000씨신위'다.

죽은 자에 대한 예우는 현재진행형이다. 공무원의 추서(追敍)다. 사망한 자를 사망 당시의 직급보다 상위 직급으로 임용하는 것을 말한다. 경찰, 군인, 자치단체 직원 등 공무원이 전사하거나 공무로 사망을 하면 그 사망 기일에 소급해 기존 직급보다 한 단계 높여 준다. 중위가 대위로, 사무관이 서기관으로, 소방장이 소방위로 추서 된다. 1계급 특진이 상례다. 전사와 순직의 내용과 강도에 따라 2 직급을 올려주는 경우도 있다.

왜 우리는 이처럼 죽은 자를 예우하는 것일까? 죽은 자가 죽기 전에 벼슬하지 않았지만 한 것처럼 지방을 써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전사하거나 순직한 자 역시 전사나 사망 전 특진을 요구하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유족 역시 전사나 순직의 대가로 특진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벼슬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측은지심일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 보상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살아서 벼슬을 하지 못한 비애와 회한을 죽어서라도 풀라는 산 자의 배려라고나 할까?

이도 저도 아닌 '귀신'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닐까? '귀신'은 '鬼'와 '神'으로, 모두 죽은 자의 영혼(靈魂)이다. '鬼'는 유족들의 제사가 없어 젯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영혼이고, '神'은 해마다 젯밥을 얻어먹는 영혼이다. '귀'는 이승에 대한 불만과 미련이 남아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구천(九天)을 떠돌며 유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악 영향을 미친다. 반면 '신'은 안전하게 이승을 떠나 유족 등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귀'가 되는지, '신'이 되는지 누구도 절대 모른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영혼에 대한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영혼은 '혼(魂)과 백(魄)'으로 구분된다. '혼과 백'은 살아있는 동안 몸속에 공존한다. 죽으면 '혼'은 육체에 분리돼 3일 동안(장례기간 동안) 육체를 맴돌다 하늘로 사라진다. 조문 때 재배(再拜)가 영혼이 둘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혼'과 '백'에게 각각 예를 표하는 셈이다. '혼'이 사라져 유족은 죽은 자와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다. 부부도, 부자도 아니다. '혼'은 유족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백'이다. '백'은 뼛속에 남아 100년여 동안 영향을 미친다(매장 경우). 100년 후 뼈가 진토(塵土)가 되어 '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4대 봉사(奉祀)의 근거(1세대 25년)다. 여하튼 밑져 봤자 본전인 셈으로 죽은 자에 경의를 표했다. 특진시켜 '귀'와 '백'을 위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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