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김수영문학관’ 전경. / 뉴시스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김수영문학관’ 전경. / 뉴시스

[중부매일 아침뜨락 류시호] 얼마 전,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김수영 문학관을 갔다. 한국문학의 대표적 자유시인인 김수영 시인이 생전에 시작(詩作)생활을 하였던 곳에 5년 전 건립하였다. 근처에 연산군과 정의공주 묘가 있고, 이곳 문학관은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둘레 길과 더불어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으로 많은 문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문학관에는 '현대문학'편집장이었던 동생 김수명이 소장한 유품과 가족들로부터 김수영 유품의 기증을 받았다. 기념관 안에는 김수영 연보 및 6·25 전쟁과 4·19 혁명, 5·16 쿠데타 등 현대사의 질곡을 겪으며, 그가 온몸으로 표현한 시와 산문의 육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다. 영상실에서는 김수영의 생애를 그 당시 사회상과 더불어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어서 김수영 시인의 시비(詩碑)가 있는 도봉산을 갔다. 험준한 봉우리가 하얀 구름을 껴안은 하늘을 보며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맑은 개천이 흐른다. 조금 더 가면 서울 경기지역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서원이며 서울시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도봉서원' 이 있다. 근처에 이병주 소설가의 북한산 찬가비가 있고, 서원과 담을 경계로 김수영 시인의 시비가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중략)/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시는 김수영의 '풀' 이라는 시로 김수영은 명사인 풀, 비, 동풍, 바람, 풀뿌리 등과 동사인 눕는다, 운다, 웃는다 등으로 반복되는 리듬을 통해서 신비와 깊이를 끌고 간다. 김수영은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삶을 마감한 도시적 시인이었다.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던 김수영 초기 시풍에 변화를 가져 온 것은 6·25 전쟁이었다. 그는 서울에 남았다가 의용군에 붙들리어 북한으로 끌려가 인민군이 되었다가 탈출하여 집으로 오다 경찰의 불심 검문에 걸려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수용소에서 통역을 하다가 석방되었는데, 이 난리 체험이 김수영에게 자본주의, 물질 만능주의 등에 대한 비애, 설움,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부정적인 것들을 마음껏 내뱉는 시어들이 되었다.

그러던 그에게 4.19와 5.16은 시의 전환기를 맞았다. 개인적인 세계에서 시인의 인식은 사회, 역사적, 세계적 인식으로 전환되고 혁명과 자유에 대한 이상을 토해냈다. 그는 예술성을 중시하는 훈수파가 아니고 사회적인 비판을 즐기는 참여파 시인이었다. 김수영은 일제 치하에서의 혼란한 삶, 광복, 4.19혁명, 5.16군사정면 등 한국 근대 역사를 거치며 불가능한 꿈과 이상에 도달하려고 애를 쓴 시인이었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김수영 시인의 시비(詩碑)와 이병주 소설가의 북한산 찬가비를 세심하게 감상하고 녹음이 짙은 근처 식당에서 함께 간 일행들과 식사를 하며 김수영의 시 풀을 함께 낭독을 했다. 하늘은 푸르고, 맑은 시냇물 소리와 도봉산 봉우리 위에 걸쳐있는 하얀 뭉게구름이 시심(詩心)을 발동 시킨다. 인문학이란 사람의 마음이 빚어내는 무늬라고 하는데, 삭막한 공간도 마음의 무늬가 입혀지면 다정한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우리 모두 새로운 삶을 위하여 자연의 지혜를 인문학에서 배워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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