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기무사'역사속으로
軍, '기무사'역사속으로
  • 임정기 기자
  • 승인 2018.08.22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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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임정기 국장 겸 서울본부장
국군기무사령부 2018.8.14 / 연합뉴스
국군기무사령부 2018.8.14 / 연합뉴스

[중부매일 메아리 임정기] 한 때 국군기무(機務)사령부(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령부를 빗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군(軍) 정보사의 위세를 표현한 것이다.

기무사의 모체는 1948년 5월 '조선경비대 정보처'에 설치된 '특별조사과'이다. 육군본부 정보국 특무대로 개편된 이 특별조사과는  한국전쟁 기간인 1950년 10월 육군 특무부대로 창설된다.

1953년 1월 해군 방첩대에 이어 54년 3월 공군 특별수사대가 잇따라 설치되면서 육·해·공군이 각각 따로 방첩부대를 운용하는 3군 방첩부대 체제가 된 이후 60년 7월 육군 방첩부대에 이어 68년 9월 육군 보안사령부와 해·공군 보안부대로 각각 개칭된 뒤 77년 10월 이들을 통합한 국군보안사령부가 창설된다. 

3군 통합 방첩부대인 보안사는 노태우 정부 시절 윤석양 이병에 의한 보안사의 불법 민간인 사찰 폭로로 1991년 1월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돼 현재에 이른다. 

기무(機務)는 '근본이 되는 일', '중요하고도 기밀한 정무' 등의 의미를 지닌다.

기무사는 대통령령인 국군기무사령부령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군 수사·보안 방첩 부대이지만 초기부터 불법적 체포와 수사, 사건조작, 정치공작 등으로인해

국민들에게 독재시절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바탕으로 한 폭압·공포 정치의 상징으로 각인 돼 있다.

이는 과거 우리 역사의 굴곡 속에서 기무사가 음습한 조작과 상상을 초월한 공작정치 등으로 악역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보안사는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로 권력의 정점에 서게된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인 '10·26 사태'가 나자 직속상관인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전격 체포하고 실권을 장악한다.

이후 전두환 사령관은 1980년 5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뒤 제5공화국 시대를 연다. 보안사는 이후 전두환, 노태우, 박준병 등 신군부 실세들이 사령관을 잇따라 역임하면서 독재권력의 핵심 기구화 된다. 

노태우 정부 시절 윤 이병에 의한 불법 민간인 사찰 폭로로 보안사는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돼 현재에 이르렀지만 이번 계엄령 검토 문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런 기무사가 지난 14일 창설 27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국방부가 입법예고한 기무사 폐지령안과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제정령안 등을 심의·의결했다.

임정기 국장 겸 서울본부장
임정기 국장 겸 서울본부장

문 대통령은 "기무사는 그동안 민간인 사찰, 정치개입 선거개입, 군내 갑질 등 초법적인 권한 행사로 질타를 받아왔다"고 비판했다.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해서는 "범죄 성립 여부를 떠나 기무사가 결코 해서는 안 될 국민배신 행위였다. 국민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이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새로 태어난 기무사가 순수 군사 보안과 방첩에만 전념하는 군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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