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나라를 가리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한다. 충효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웃어른을 공경하고 일상생활에서 규범에 충실했다는 점서 예로부터 그런 찬사를 부여한 것 같다.
 그런데 이 화려한 문구는 출전의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어떤 문헌도 이를 고증할만한 대목을 아직 찾지 못했다. 한국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수식어는 '서라벌' '조선'등의 국호와 더불어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출전은 명확하지 않다.
 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그렇게 부른 것인지,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호칭한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생활의 모든 면에서 예의 범절이 뛰어나 막연히 이처럼 부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같은 찬사는 다분히 나르시시즘적인 시각에서 탄생한 것 같다.
 동방예의지국 출발점도 상당히 모호하다. 성리학이 국가 통치 이념의 잣대가 되었던 조선시대까지는 최소한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화자찬식의 찬사가 통했을지라도 현대사회에서는 '아니 올씨다'라는 부정적 견해 쪽으로 말뜻이 기운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했다'라는 문구가 관용구처럼 등장하지만 사람들의 세상살이 백태를 반추해 보면 '동방예의지국 맞아?'라는 의문 부호를 찍게 된다.
 서양사람들은 등산 등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면 '하이(Hi)'라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지나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인사는 커녕 상대방을 경계하며, 심지어는 노려보며 그냥 지나친다.
 길을 지나다 웃 어른을 보면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인사를 하는 공수(拱手)의 예절도 실종됐다. 아는 사람끼리는 당연히 인사를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하면 오히려 당황해 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의 '예절'에 대응되는 서양의 말은 아마도 '매너'일 것이다. 서구의 아이들은 일찍부터 매너 교육을 받는다. 시민사회에서 매너를 지키지 않으면 그 사회가 지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양 아이들은 버스나 기차에서도 좀체로 앉지 않으며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쿵쿵 뛰고, 공중 목욕탕에서 수영을 하듯 마구 분탕질을 쳐도 말리는 어른이 별로 없다. 버릇없이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공중질서를 잘 안 지키기 마련이다.
 어른들의 매너가 엉망이니 아이들만 탓할 수도 없다. 행락지에서의 고성방가, 식당을 전세내었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신들린듯 펄펄 뛰고 악다구니를 쓰는 관광버스 탑승객, 신호등 차선을 마구 위반하는 낙제점 교통질서 등 생활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동방예의지국의 흔적을 좀체로 찾아볼 수 없다.
 OECD에 가입하고 국민소득 1만달러를 웃도는 선진국 대열에서 이에 걸맞는 시민예의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겉으로는 '동방예의지국'을 외치면서도 실제 행동은 '동방무례지국'에 가깝다.
 매너를 지키지 않으려면 이런 찬사나 하지 말것을, 괜시리 예의지국만 부르짖다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사례가 한 두번이 아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시민질서는 시민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