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학 애도문. / 당진시

[중부매일 이희득 기자]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가슴 절절한 사랑이 400여년의 시간을 거슬러 빛을 보게 됐다.

당진시에 따르면 16세기 임진왜란 이전에 작성된 애도문(哀悼文)이 발견 당시 함께 출토된 백자명기류와 함께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243호로 지난 10일 지정됐다.

애도문의 작성자는 안민학(1542~1601)이라는 분으로, 본관이 광주(廣州)이며, 자는 이습(而習), 호는 풍애(風崖)이다.

안민학은 어렸을 때부터 재능이 뛰어나 1580년(선조13년) 율곡 이이의 추천을 받아 희릉참봉(종9품)이 되었다가 1583년 사헌부 감찰(정6품)을 지낸 이후 각 지역의 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 중에는 군량 수송의 공로를 인정받아 사도시첨정(종4품)에 임명되었으나 바로 사퇴하고 현재의 당진시 신평면인 홍주목 신평현에서 말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작성한 애도문은 부인 곽 씨가 편모슬하에서 자라다가 14세의 나이에 자신과 혼인한 뒤 23세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함께 생활했던 일들을 회상한 글이다.

1576년 안민학이 부인의 관속에 시신과 함께 매장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난 1978년 소유자(안승환)가 14대 조모인 현풍 곽 씨 묘를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의 선영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백자명기류와 함께 발견됐다.

애도문이 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16세기에 작성돼 임진왜란 이전 시기의 표기법과 음운, 어휘 등 중세국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당시 사대부가의 생활·문화사적 측면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녹록치 않은 형편 탓에 아내를 챙겨주지 못한 지아비로서의 자책과 회한 그리고 아내를 향한 그리움은 평생을 살아도 끝이 없다는 내용은 애도문의 작성 시기가 유교문화 국가로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조선시대라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당진시 남광현 문화재팀장은 "사대부로 한자에도 익숙한 안민학이 굳이 한글로 썼다는 점은 아내를 향한 배려로 볼 수 있다"며 "애도문 발견 당시 400여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했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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