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최용현 변호사·공증인

국군기무사령부 2018.8.14 / 연합뉴스
국군기무사령부 2018.8.14 / 연합뉴스

[중부매일 중부시론 최용현] 사상 유래가 없는 더위로 고통 받은 2018년 여름,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문건으로 우리는 또 하나의 폭염을 겪어야만 했다. 집권여당과 진보세력은 이를 청와대 핵심세력과 군 정보기관의 친위쿠데타 음모로 규정한 반면, 보수야당과 보수이데올로그들은 탄핵기각에 따른 사회혼란에 대비한 것으로 이는 모든 정권의 기본 책무중 하나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이 문건의 내용과 그 이후의 논란관정을 보며, 독일의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가 떠올랐다.

슈미트는 법학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저명한 헌법학자이다. 그러나 그가 특출한 정치학자였음을, 그것도 지난 세기말 신보주주의가 득세함에 따라 최고의 관심을 받는 정치철학자임을 알고 있는 이는 드물다. 그의 '정치신학'(1922년)과 '정치적인 것의 개념'(1927년)은 홉스의 '리바이어던', 소렐의 '폭력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가장 '위험한' 정치고전 중 하나다. 위험하다? 그 사유의 시작과 결론이 극단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더욱이 그의 사상이 때론 극우적으로, 때론 정반대로 극좌적으로도 해석되기에 그렇다. 실제 슈미트의 정치철학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학자들 중에는 무페, 아감벤, 지젝 등 좌파 민주주의 이론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슈미트는 정치의 특유의 표지는 '적과 동지의 구분'에 있다고 말한다. 슈미트에게 이러한 정치(적과 동지의 구분)의 결절점은 국가다. 즉 국가의 통치자는 비상상황에 처하면 예외상태임을 선언하여 어느 집단을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과 독재를 통하여 헌정질서를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때의 통치자의 결단은 2가지 측면에서 무제약적이다. 첫째 지금의 상황이 내전과 독재를 수행해야 할 예외상태에 해당되는가에 판단은 오직 통치자 자신의 의사에 따를 뿐, 미리 제한되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둘째 그러한 상태에서 통치자는 어떠한 권한과 수단을 행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역시 오직 그 자신의 의지에 따를 뿐, 미리 주어진 한계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슈미트의 논리가 현재의 우리 헌법상의 계엄으로 발전한 것이다.

슈미트의 논리를 '위기와 적이 독재를 필요로 한다'는 것으로, 즉 '적과 동지의 상존 → 헌정질서 위기국면 → 주권자의 결단 → 내전과 독재 → 헌정질서의 수호'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생각이다. 헌법학자가 아닌 정치철학자 슈미트는 오히려 '독재를 위하여 위기와 적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렬하게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독재의 유지를 위하여 위기는 계속 유지되어야 하고, 독재의 필요에 따라 적은 내·외부적으로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철학으로 그는 나치에 가입하고 그들에 의해 계관법학자로 예우를 받았던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10회나 반복되었던 계엄의 현실도 정치철학자 슈미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정부 수립 직후 있었던 여수와 제주 계엄부터 유신 계엄을 거쳐 1980년 신군부의 계엄까지 모든 계엄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군부쿠데타나 독재정권을 옹위하기 위하여 행해졌고, 그 과정에서 위기는 과장되고 적은 만들어졌다. 자유와 민주주의, 민주헌정질서의 회복을 주장하는 시민들은 적으로 간주되고, 그들의 분노의 외침은 위기로 꾸며졌던 것이다. 이번 기무사 계엄 문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음험한 일부 집권세력과 군부세력에게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시민은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 언제라도 북한과 연계하여 헌정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종북세력으로 간주되었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이번 기무사 계엄 문건에서 보듯 21세기 민주주의 대명천지에서도 슈미트주의자들은 여전했다. 그러나 민주헌정질서에 위기를 초래하고 민주헌정질서를 전복하려는 적들은, 오히려 군에 의한 헌정질서 수호를 외치며 시민들을 적으로 돌리는 바로 그들 자신임을, 그들이 알 수나 있을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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