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인 약국, 시아버지 인수 대물림
일제강점기 일본인 약국, 시아버지 인수 대물림
  • 김미정 기자
  • 승인 2018.08.26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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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최고 가게] 10. 100년 한자리 '청주약국'
'청주의 100년 가게'로 불리는 '청주약국' 신동남(57) 대표약사가 약국 앞에 설치된 청주읍성남문터 표지석 옆에서 활짝 웃고 있다. '청주 100년의 가게'로 불리는 청주약국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운영하던 약국을 1945년 시아버지인 故신철우씨가 넘겨받아 운영하다가 1962년 맏며느리인 신동남 사장에게 물려줘 지금까지 한 자리서 운영되고 있다. / 김용수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약(藥) 이라는 한자를 보면 풀 '초'에 즐거울 '락'이 들어있어요. '삶을 즐겁게 해주는 풀'이 약인 거죠. 약을 판다는 건, 사람들을 안 아프게, 덜 아프게 해서 즐겁게 살도록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청주에서 최대 번화가였던 남문로2가에 위치한 '청주약국' 신동남(57·여) 사장은 '약'을 매개체로 사람들에게 건강과 즐거움을 전하고 있다. 

'청주의 100년 가게'로 불리는 청주약국은 충북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다. 청주약국 네거리는 조선시대 청주읍성에서 가장 큰 문인 청남문이 들어서있었고, 청남문에서 한복거리 쪽으로 전통시장의 원조인 저자가 열렸다. 1980년대까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붐비던 번화가 중의 번화가가 청주약국 네거리였다.

"단골중에 '소화제도 청주약국 소화제를 먹어야 낫고, 박카스도 청주약국 것이 더 효과가 좋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아픈 몸 다 나으시면 고맙다고 과일도 갖다주시고, 농사지은 고추도 따다 주시고 그러세요."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백발머리에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하다. 가게의 긴긴 역사만큼이나 단골들도 나이를 먹었다. 하루평균 방문객 300여 명 중 60~80대 노인들이 70%를 차지한다.

"단골중에 한달에 한번씩 자전거 타고 약국에 오셨던 100세가 넘는 '하하하할아버지'가 기억에 남아요. 오시면 항상 비타민드링크 하나 꼭 드시고 비상약을 사가셨어요. 그러면서 "청주약국이 최고여~" 하시면서 엄지척을 날리셨죠. 얼마전 작고하셨는데 살아계셨으면 105살이실 거에요."
 

'청주약국'은 1910년대 청주시 남문로2가에서 문을 연뒤 지금까지 100여년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시 청주약국 네거리는 조선시대 청주읍성에서 가장 큰 문인 청남문이 들어서 있었고, 청남문에서 한복거리 쪽으로 전통시장의 원조인 저자가 열렸다. / 청주시 제공
'청주약국'은 1910년대 청주시 남문로2가에서 문을 연뒤 지금까지 100여년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시 청주약국 네거리는 조선시대 청주읍성에서 가장 큰 문인 청남문이 들어서 있었고, 청남문에서 한복거리 쪽으로 전통시장의 원조인 저자가 열렸다. / 청주시 제공

100세 단골이 있는 청주약국의 나이도 100세다. 일제시대였던 1910년대에 지금 자리에서 문을 열었다. 독일에서 유학한 일본인 약사 소전씨가 '소전약국'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했고, 당시 신동남 사장의 시아버지인 故 신철우씨는 점원으로 일했다. 이후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소전씨는 가게를 故 신철우씨에게 넘겨줬다. 당시 27살이었다.

"광복되고 나서 일본사람들이 떠나면서 시아버님이 워낙 일도 잘하고 총명하니까 소전씨가 아버님에게 약국을 물려줬다고 들었어요. 아버님께서 돈을 주고 가게를 사셨다고 들었어요."

신씨는 '청주약방' 이름으로 시작한뒤 '청주약국'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약사가 아니었던 故 신철우씨는 약사를 두고 가게를 운영했고, 이후 지금의 신동남 사장을 맏며느리로 맞으면서 대물림할 수 있었다. 신동남 사장은 1986년 결혼과 동시에 약국을 맡게 됐다. 그녀의 나이 25살에 시작해 올해로 33년째다. 

"옛날에는 문 열면 약 사러 온 사람들이 문앞에 2줄, 3줄씩 서있었대요. 장날에는 시골에서 수십리 길을 걸어 육거리시장에 와서 장을 봤고, 청주약국에 와서 약을 사가셨대요."

60~70년대에는 매일 새벽 4시부터 박스포장 작업을 해서 다른 지역 약국으로 약을 배달보냈단다. 청주약국이 충북에서 가장 오래됐고 규모도 가장 컸기 때문이다.

"장날이면 시어머니께서 가마솥 같은 것에 밥을 해서 약국에 온 사람들에게 밥을 다 해먹이셨다고 들었어요. 하루종일 밥을 하셨었다고.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60~70년대 얘기에요."

신 사장의 시어머니는 장날이 아닌 날에는 매일 약국 직원들의 3끼니를 손수 지어 먹이셨단다.
 

1945년 '청주약국'을 이어받아 운영해온 故 신철우씨. 현 신동남 사장의 시아버지다. / 신동남 사장 제공
1945년 '청주약국'을 이어받아 운영해온 故 신철우씨. 현 신동남 사장의 시아버지다. / 신동남 사장 제공

"아버님은 한학자이셨어요. KBS '공자왈 맹자왈' 프로그램 방송도 하셨었어요. 82세에 돌아가셨죠."

항상 가족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약을 팔자. 청주약국의 70년 넘게 이어져온 철학이다. 

"남편이 어렸을 때 한밤중에 갑자기 열이 나고 아파서 시아버님께서 등에 업고 약국에 왔는데 어떤 약을 줘야 할지 몰라서 막막했다면서. 그때 이후로 내 가족이 먹을 약을 생각해서 약을 구입하고 사람들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신동남 사장의 남편 신대성(61)씨는 故 신철우씨가 41살에 낳은 장남이다. 그때부터 청주약국은 돈을 벌기 위한 약이 아니라 건강을 생각한 약을 팔고 있다. 남편 신대성씨는 한의사였다. 청주약국에서 취급하는 약 종류만 3천종, 좋은 회사의 좋은 약을 깐깐하게 선정한다고 신 사장은 말했다.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약이잖아요. 잘못 투약하면 몸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요."
 

청주약국을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신동남 대표약사가 고객과 상담을 하고 있다. 하루평균 300명이 찾는 청주약국은 고령층 단골이 70%이다. / 김용수

계절에 따라 사람들이 찾는 약들도 다르다.

"겨울철에는 특히 혈액순환약이 두드러지게 많이 나가요. 여름철에는 체력이 떨어지니까 비타민종류나 태반종류, 아미노산종류 등 몸을 보충해주는 약이 많이 나가고요."

약 종류가 다양해졌다. 그만큼 좋은 약을 선별할 수 있는 '눈'이 중요해진 것이다. 

"옛날에는 무조건 아끼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평균수명이 늘면서 건강하게 잘 살자는 마인드니까 평소 건강관리를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게 본인이나 가족에게나, 국가적으로도 현명한 거예요."

장수비결로는 '좋은 약을 쓰자'는 운영철학과 오랜 단골의 힘을 꼽았다. "단골들이 약국을 더 오래 운영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20년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어서 나이드신 분들을 보면 대하기가 편하고, 어디가 아프신지 더 잘 보이더라고요."
 

신동남 청주약국 대표약사가 약 조제실에서 약을 확인하고 있다. 청주약국에서 취급하는 약 종류는 3천종에 달한다. / 김용수

앞으로 계획은 오래오래, 잘할 수 있는 약국을 운영하는 것.

"아들이 둘인데 태양광에너지를 연구하고 있어요. 자녀들에게 대물림을 강요할 수는 없고, 저처럼 약사며느리를 맞으면 모를까. 하늘이 저에게 '상'을 주신다면 가게를 더 이어갈 수 있겠죠."
신 사장은 청주약국이 작은 '샘물' 같은 존재로 지역에 남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지구가 혼탁해도 매일 솟아나는 작은 샘물은 항상 맑을 물을 먹을 수 있게 해줘요. 조금씩 퐁퐁퐁 솟는 샘물의 힘으로 청주약국이 청주시민들을 건강하게 오래오래 지켜주고 싶습니다."

몇년도 버티기 힘든 자영업 현실속에서 100년간 한 자리를 꿋꿋이 지켜온 '청주약국'의 '100년 가치'가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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