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감꽃 / pixabay
감꽃 / pixabay

 

[중부매일 아침뜨락 김민정] 불볕 같은 태양이 연일 대지를 달구고 있는 여름이다. 출근길에 오가며 눈독 드렸던 땅콩이며 고구마, 들깨등 아침이면 생기가 넘쳐나던 밭작물들이 서 있는 채로 말라 죽어가고 있다. 너무 질기고 따가운 태양에 소실점을 잃어버린 생활은 불규칙해졌고 신체리듬이 동적 평형을 잃은 지 오래다. 이런 폭염과 가뭄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먹고 마셔야 할 모든 것들까지도 위협을 받고 있다. 입은 옷은 하루에도 몇 번은 말랐다 젖었다 해야 하루의 일과가 마쳐진다. 이 여름에 땀을 흘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의 계층의 사람 밖에 없음을 안다. 땀의 소중함을, 땀의 겸허함을 존중하였던 나였지만 지금은 그저 생물학적 체온조절을 위해 흘리는 신체적 항상성에 불과할 뿐이다. 이 뜨거운 여름을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싶어진다.

"3년 전 여름 엄마는 말했다./ 더위 많이 타는 아들 힘들어서 어쩌니.

2년 전 여름 엄마는 말했다./ 더위 고생 잊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1년 전 여름 엄마는 말했다 / 더위 고생 마지막이니 힘내라 아들.

올해 여름 엄마는 말씀하시겠죠? / 더위… 아들과 함께여서 행복하다고…

엄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엄마의 여름나기' 전문

이 시는 재소자들의 종합 문예지 '새길'에 실려 있는 시다. 이 시를 쓴 재소자의 어머니는 3년 전 여름에 면회를 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더위 많이 타는 아들 힘들어서 어쩌니." 2년 전 여름에 면회 왔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서 생활) 더위 고생 잊지 말고 (앞으로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1년 전 여름에 면회 왔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더위 고생 마지막이니 힘내라 아들." 마침내 출소 날이 다가왔다. 이번 여름에는 어머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여름나기가 자기보다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고는 이 시의 제목을 '엄마의 여름나기'로 붙였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시의 일부가 되기에는 너무나 평이한 고백이지만 감동적인 마지막 연을 지닌 이 시가 실려 있는 '새길'을 들고 출소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이 승하 시인의 강연내용의 일부이다. 일반적인 사람이 이 시를 썼다면 감동은 덜 했을 것이다. 여름이 못 견디게 더워도 아들을 교도소로 보낸 어머니의 사랑만큼은 아니다. 모두가 덥고 뜨겁다고, 백 년 만에 마주하는 날씨라고 푸념을 하고 있는 지금, 이보다 더 아픈, 더 슬픈, 더 상처받고 더 뜨거운 일을 지우고 싶은 사건을 이겨냈던 그 일을 생각하면 그래도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뜨거운 일을 부딪칠 때마다 그 보다 더 절실하고 간절한 소망에 빠져 들다보면 더위는 어느 덧 꼬리를 감추고 달아났다.

오늘 우연히 감나무 밑을 지나다가 땅에 떨어진 감꽃을 발견하고 위를 처다 보니 꽃을 떨구고 난 자리마다 푸른 애기 감이 올망졸망 공갈 젖꼭지를 내밀고 있다. 바야흐로 가을이 오고 있다. 여름도 차츰 지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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