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계를 동경하는 속세사람들이 신선이 되는 곳

산막이마을(연하동)과 달천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화양천을 아우른 달천은 후영리, 지촌리를 거쳐 덕평리로 흘러간다. 후영리에서 달천은 남북방향으로 흐른다. 하천 주변에 농토가 발달해 있다. 지촌리에는 요평들이 있고, 유원지가 있다. 덕평리는 청천면의 북부지역 중심마을이다. 그래서 1980년 청천면 덕평출장소가 문을 열기도 했다. 한때는 덕평장이 서기도 했다.

덕평리는 또한 청안면, 문광면, 칠성면으로 넘어가는 교통의 요지다. 515번 도로가 청안면으로 이어지고, 49번 도로가 문광면으로 이어지며, 산막이길 임도가 칠성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덕평리를 지난 달천은 운교리를 거쳐 칠성면 사은리로 내려간다. 운교리라는 마을 이름은 달천에 구름다리(雲橋)를 놓았다 하여 붙여졌다. 그러나 현재는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졌다.

운교리 아래 사은리는 요즘 산막이길로 유명한 마을이다. 그러나 원래는 산속 막다른 곳에 있는 마을이었다. 마을 이름도 모래톱 안쪽을 뜻하는 내사리(內沙里)와 칡넝쿨 우거진 숨겨진 마을 갈은리(葛隱里)에서 한 자씩 따 사은리(沙隱里)가 되었다. 사은리에는 이들 두 마을 외에 굴바위(窟巖)와 산막이(山幕里)가 있다. 이들 마을 중 굴바위와 산막이는 1957년 세워진 괴산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이곳에 산막이옛길과 양반길이 만들어지면서 걷기길의 명소가 되었다. 특히 산막이옛길은 하루 관광객이 만 명이나 몰린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대부분 괴산댐에서 연하동에 이르는 구간을 걷거나 유람선을 타거나 등산을 한다. 그 때문에 연하동에는 펜션과 민박집 그리고 식당이 번창하고 있다. 유람선은 산막이길 나루에서 연하동 선착장을 거쳐 신랑바위까지 운행된다.


# 갈은동문(葛隱洞門)에서 시작하는 갈은구곡

갈은구곡

운교리에서 사은리로 이어지는 길이 양반길이다. 운교(구름다리)나루에서 운교리 목교를 거쳐 갈론나루까지 이어진다. 이 길은 걷기길 보다는 등산로로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길이 좁을 뿐만 아니라 오르락내리락 경사가 심하기 때문이다. 양반길은 옥녀봉(599m)과 아가봉(541m)을 오르는 등산로 중 운교리, 지촌리, 갈론리를 이어주는 마을길을 연결한 것이다.

그러므로 관광객들은 양반길 중 제2코스인 갈은구곡길을 즐겨 찾는 경향이 있다. 갈은구곡길은 2016년 9월에 새로 놓인 연하협다리에서 1㎞쯤 떨어진 갈론 마을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갈은과 갈론이라는 마을 이름이 같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법정리 명칭은 갈은이다. 그렇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갈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그래서 곳곳의 표기에서 이 두 가지 명칭이 혼용되고 있다.

갈은구곡은 갈은동문(葛隱洞門)에서 시작한다. 마을에서 갈론교를 건넌 다음 900m쯤 가면 왼쪽에 깨끗한 못(潭)이 나오고 그 오른쪽으로 높은 바위절벽이 나타난다. 절벽 위에 바위가 하나 우뚝 솟아있고, 아래 부분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은동문이라 음각했다. 갈은동문은 갈은구곡의 선계(仙界)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문이라는 뜻이다.

이곳을 지나 계곡을 따라 9개의 명소가 있는데, 그곳에 이름을 붙이고 바위에 글씨를 새겨 넣었다. 그것이 갈은구곡이다. 제1곡 장암석실(場巖石室), 제2곡 갈천정(葛天亭), 제3곡 강선대(降僊臺), 제4곡 옥류벽(玉溜壁), 제5곡 금병(錦屛), 제6곡 구암(龜巖), 제7곡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 제8곡 칠학동천(七鶴洞天), 제9곡 선국암(仙局巖).

강선대

제1곡 장암석실은 암장으로 이루어진 바위 아래 방 같은 공간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장암석실 건너편에는 제2곡 갈천정이 있다. 이름으로 보아 이곳 바위 위에 정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갈천정 각자 아래 전덕호(全德浩)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글씨를 새겨 넣은 사람이 전덕호라는 생각이 든다.

장암석실에서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계류를 건너 똑 바로 가면 그곳에 제3곡 강선대가 있다. 강선대는 이름 그대로 신선이 내려와 놀던 곳이다. 그 때문인지 강선대 아래 물이 깊고 맑다. 강선대 암벽에는 각자 외에 칠언절구 시가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신선이 내려온 이야기가 아니고, 이곳을 찾는 속세사람들이 신선이 된다는 얘기다.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진짜라고 해야 할까? 不是荒唐不是眞

이 세상에 신선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世人能幾見仙人

참으로 이상하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 모두 却怪令人來到此

가슴속 상쾌해져 저절로 신선처럼 되니. 胸襟落自無塵


# 이제 산속으로 들어간 다음 선계로

제6곡 구암

강선대까지는 인간계에서 신선계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이곳에서 남쪽 상류로 1㎞ 정도 올라가면 제4곡 옥류벽이 나온다. 옥 같은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벽이라는 뜻이다. 그 때문인지 옥류벽 아래 물이 더 맑고 깨끗하다. 옥류벽 바로 위에는 금병이 있다. 금병은 비단 같은 병풍바위다. 그렇지만 그 글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바위도 병풍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비단 같다는 말은 과장이다.

제6곡 구암은 말 그대로 거북바위다. 암벽에 구암이라는 각자와 7언절구 시구가 새겨져 있다. 늙은 거북이 차가운 샘물을 들이키고 내뱉는 모양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것 같다고 쓰고 있다. 이 역시 과장이다. 구암 골짜기를 지나면 이제 선계 초입이 나온다. 그곳에 제7곡 고송유수재가 있다. 노송 아래로 흐르는 물가에 지은 집이라는 뜻이다. 고송유수재가 갈은구곡 중 경치가 가장 좋고 이야기도 많은 곳이다.

고송유수재는 선계를 동경하는 인간이 사는 집이다. 이곳에 사는 인간은 선계를 동경하며 바둑을 둔다. 그곳이 제9곡 선국암이다. 고송유수재와 선국암 사이에 제8곡 칠학동천이 있다. 말 그대로 일곱 마리 학이 살고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학은 날아가 보이지 않고 구름만 떠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들이 바둑을 두다가 어느 순간 학을 타고 선계로 올라가는 일을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마지막 선국암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옥녀봉 산마루에 해는 저물어가건만 玉女峰頭日欲斜

바둑 아직 끝내지 못해 각자 집으로 돌아가네. 殘棋未了各歸家

다음날 아침 생각나 다시 찾아와 보니 明朝有意重來見

바둑알 알알이 꽃 되어 돌 위에 피었네. 黑白都爲石上花

고송유수재

이곳 고송유수재에는 선계로 오르길 희망한 속세 사람들의 이름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대표적으로 대하소설 '임꺽정'을 쓴 홍명희의 조부 홍승목(洪承穆: 1847-1925)의 이름이 보인다. 홍승목은 187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해 이조참의까지 지낸 인물이다. 이곳에는 또 전덕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갈은구곡에서 속세로 나가는 길은 괴산댐을 지나 외사리로 이어진다. 괴산댐은 1957년 우리 기술로 만든 최초의 댐이다. 길이 171 m, 너비 45 m, 높이 28 m로 만수위가 해발 135.7m다. 괴산댐을 지나면 외사리가 나온다. 외사리에는 당간지주(충북 유형문화재 제139호)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외사리에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이상기 충북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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