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빛이 방죽에 내려앉아 여러 생명체의 부활을 재촉한다. 억새를 스치는 갈 바람에 강아지 풀이 덩달아 머리채를 흔들고 네발나비는 들꽃을 옮겨 다니며 생명의 몸짓을 계속한다.
 택지개발 지구로 고시된 산남 3단지 원흥이 방죽 일대는 환경단체의 말처럼 '청주의 우포늪'으로 도시생활의 땟국을 날마다 걸러낸다.
 다른 곳에서 도시공해에, 농약공해에 멍든 생물들이 생명의 요소를 자연스럽게 간직한 산남 3지구로 몰려들면서 원흥이 방죽 일대는 예정에 없는 도심 속의 생태공원으로 변하고 있다.
 빈 들녘엔 고추 잠자리가 저공 비행을 하며 순찰을 돈다. 기름진 문전옥답엔 개망초, 쑥부쟁이, 돌미나리, 쇠무릎이 지천으로 자라고 5월 단오때 여인네가 머리를 감는 재료인 창포는 원흥이 방죽을 둘러싸며 칼잎을 곧추세우고 있다. 마치 문명의 삽질에 대항이라도 하겠다는 기세다.
 방죽 주변으로는 별모양의 환삼덩쿨, 거미의 집이 되는 키다리풀, 한국적 향수와 운치를 지닌 버드나무,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고사를 간직한 그령(큰 잡초)이 길손의 발을 묶는다.
 방죽 가운데는 애기마름이 레이스 처럼 소매끝을 장식하며 둥실 떠 있다. 아침이면 실잠자리떼가 이슬처럼 피어 오른다. 이따끔 청둥오리나 황백로떼의 군무도 구경할 수 있다.
 방죽의 파수꾼은 역시 두꺼비다. 인근의 구룡산과 원흥이 방죽을 오가며 생활하는 두꺼비가 이곳에서 집단 서식하며 친환경 개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삭막한 도심에서 개구리 두꺼비 울음을 듣는다는 것은 큰 낭만이다.
 원흥이 방죽 일대는 이처럼 생명체들의 함성으로 뒤덮혀 있다. 원흥이 방죽 보존과 친환경 개발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방죽을 에워싸고 있다. '내년에도 우리와 꼭 친구하자'<청주역사문화학교 두꺼비 기자단> '우리들의 놀이터 원흥이를 살려주세요'<원흥이 탐사대> '토지공사와 청주시는 살 길이 막막한 산남 3지구 주민들의 생존권 보장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생태교육연구소 터>
 생존권의 보장요구는 어찌 두꺼비 뿐이겠는가. 원흥이 방죽 옆으로는 족히 수백년의 나이테를 간직한 당목(堂木)이 쓸쓸한 벌판을 지키고 있다.
 이 일대는 청주에서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寶庫)이기에 찾아드는 사람이 심심찮게 많다. 주말이면 어른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소풍겸 해서 이곳을 찾는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교육프로그램을 곁들여 자연의 소중함을 아이들에게 일깨운다.
 그 도심의 낭만은 이제 며칠남지 않았다. 흙에서 살던 생물체들이 시멘트의 문화와 공존할 수 있을까. 예전과 똑같은 방식의 생명체 보존은 불가능하다. 여기에선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개구리 두꺼비의 울음을 삽질로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의 교향시를 들을 수 있도록 문명과 자연이, 개발과 보존이 손을 잡고 악수를 하는 일이다.
 녹색지대를 마구 밀어버리고 시멘트로 자리바꿈을 하는 일방통행식의 개발이 아니라 회색지대에서도 억새가 자라고 두꺼비가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쌍방통행식 개발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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