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 pixabay
/ pixabay

[중부매일 아침뜨락 김경구] 얼마 전 우리 지역의 문학특강에 다녀왔다. 마침 시간이 돼 두 작가의 특강을 들을 수 있었다. 모두 시를 쓰는 분들로 연세도 비슷한 듯싶다. 두 분의 공통점은 정말 열심히 사셨다는 것이다. 겉으로 봐서는 좋은 환경에서 남부럽지 않게 사셨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가족을 잃기도 하고 동생들을 키우기도 하고... 참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삶에 감사하며 살았다는 두 선생님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또 하나 두 선생님의 공통점은 오래 전 공책이나 편지, 일기장, 사진, 상장, 성적표 같은 것을 잘 보관했다는 것이다. 세월을 먹어 빛바랜 그것은 정말 신기했다. 직접 볼 수 있게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는데 살짝 손에 닿는 느낌이 특별했다. 1970년도의 일기장은 잉크를 묻혀 펜으로 하나하나 정성을 담아 썼는데... 꼭 기계가 찍어 놓은 듯한 글씨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지역 학생들이 모여 만든 문학 동아리 책자 역시 당시의 열정이 느껴졌다.

나도 고교 때 따로 만든 문학 동아리에서 문집에 참여하고, 창간호 신문을 발간했으며 수필을 쓰기도 했다. 동아리 문집은 손으로 직접 쓰고 삽화까지 그려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회장을 맡은 친구 혼자 고생한 흔적이 묻어나 가슴이 짠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회장을 맡았던 친구는 지금 고교 음악 선생님이다. 노래도 꽤 잘 불렀던 그 친구는 현재 그 지역 음악관련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책임감 강한 건 여전하다.

나의 오래 된 것 중 하나는 저금통장과 육성회비 봉투다. 저금통장은 부채처럼 접어 맨 위 첫 장엔 열심히 일하는 벌과 벌집이 그려져 있다. 접히는 부분은 거의 떨어지기 직전이고. 매주 화요일이 저금하는 날로 백 원과 천 원 등 저금한 액수가 적혀져 있다.

아마도 6년 내내 저금한 걸로 중학교 갈 때 입을 교복과 가방 등 필요한 것을 사려고 했던 것 같다. 나도 그 돈으로 교복도 사고 가방도 샀다. 육성회비 봉투는 5학년 때 것이다. 지금의 편지봉투 반만 한 크기로 12달로 칸이 만들어져 있다. 담임선생님이 달마나 낸 날짜와 금액을 적어 놓고 도장을 찍어 주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5학년 때 조금 불안불안 했다는 것이다. 육성회비를 내야 하는데 없다고 안 주고... 정말 학교 가기가 싫었다. 선생님 얼굴과 마주치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던 중 다른 지역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집에 오시는 날이었다. 이때다 싶어 밥을 안 먹고 오리 주둥이처럼 입을 쭉 내밀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밀린 것 까지 담은 육성회비 봉투를 내밀었다.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육성회비 봉투에서 딸그락 거리는 동전 부딪히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지금 육성회비 봉투를 보니 제대로 낸 날짜가 별로 없고 두 달에 한 번씩 몰아 낸 날이 꽤 된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오래된 것들을 보면 오래된 그 날의 풍경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때론 아픔으로 때론 기쁨으로...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그 아픔도 아련한 추억으로 그립다. 사람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한 만큼 과거의 기억을 그 만큼 잊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쩜 오래 된 것들은 이런 잃어버린 잊음의 시간들을 하나 둘 꺼내어 주는 건 아닐까. 요즘은 너무 바쁘게 살아간다. 그럴 때 오래 된 것들은 잠깐 쉴 수 있는 삶의 쉼표가 되어 준다. 바람에서 초가을이 느껴지는 저녁, 오래 된 것들에 더 눈길이 머문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