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에 자결한 홍범식 열사 순국 108주기
금산향교 순절비 앞서 문정우 군수 등 참여 추모제향
금산역사문화박물관 전시공간 마련...괴산 잠잠 '대조'

제108주기 홍범식 군수 추모제향이 열린 29일 오전, 문정우 금산군수가 초헌관을 맡아 초헌례를 올리고 있다. / 금산군 제공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경술국치(庚戌國恥)에 강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완(一阮) 홍범식(洪範植, 1871~1910) 금산군수가 순국한지 29일로 꼭 108주년이 됐다.

금산에선 해마다 추모제를 열며 지역을 대표하는 애국지사로 자리매김했지만 정작 홍 열사의 고향 괴산에선 이렇다 할 추모 행사가 없어 대조적이다.

홍범식 군수 서거 108주기를 맞은 29일 오전 금산향교는 금산군 향토유적 11호로 지정된 홍범식군수 순절비에서 문정우 금산군수, 김종학 금산군의장, 설재욱 금산향교부전교 등이 헌관을 맡은 가운데 추모제를 열었다.

금산군민들에게 홍 열사는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통한다. 군수로 재직하면서 항일의병을 보호하고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의 칭송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한일합병 소식을 듣고 금산 조종산에 올라 자결함으로써 당시 360여 명 전국의 군수 가운데 유일하게 절개를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문을 연 금산역사문화박물관에도 홍범식 열사와 김지섭 의사에 대한 별도 전시공간을 마련할 정도로 홍 군수에 대한 금산군민들의 추모열기는 뜨겁다.
 

금산역사문화박물관 1층에 마련된 홍범식 군수와 김지섭 의사 관련 전시공간. 순국을 결심한 홍범식 군수가 가족에게 보낼 유서를 맡긴 사람이 김지섭 의사다. 사진 / 김정미

반면 괴산의 추모 움직임은 홀대에 가깝다. 홍 열사는 자결 이후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선산에 묻혔지만 정작 고향에선 추모제가 열리지 않고 있다.

순국 100주기였던 2010년 8월 29일 괴산문화원이 주축이 돼 거행한 추모제가 유일했다.

현재 괴산에는 홍 열사와 그의 아들이면서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가 태어난 생가(홍범식 고택, 충북도 민속자료 14호)와 추모비가 남아 있다.

아들에게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던 홍범식 금산군수. 금산향교 나희규 전교는 홍 군수의 자결이 당시 후손들에게 끼친 영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 전교는 "홍범식 군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절개를 지키고 후손들이 독립운동에 나서도록 영향을 줬다"며 "홍 군수가 가족들에게 전하는 유서를 맡긴 김지섭 의사도 홍범식 군수의 죽음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고 강조했다.

홍범식 군수는 1909년 금산군수로 부임해 이듬해 한일합방이 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했으며, 당시 금산지방법원 통역생 겸 서기를 지냈던 김지섭 의사는 홍 군수의 죽음 이후 관직을 떠나 중국으로 망명해 의열단에 가입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홍범식 열사

금산군수 시절 홍범식 열사. / 독립기념관
금산군수 시절 홍범식 열사. / 독립기념관

본관은 풍산(豊山), 호는 일완(一阮). 충북 괴산(槐山) 출생. 사도세자 비빈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 집안으로 조선후기 대표적인 명문가 자손. 1909년 금산군수로 부임해고 재임 중 한일병합조약 조인 소식을 듣고 탄식하며 자결. 순국 당시 나이는 마흔.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