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요구가 화제다. 언론 기관은 여론조사에 바쁘고, 각 정당들은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분주하다. 대통령이 APEC 정상회담 이후 각 정당대표들과 논의를 하겠다고 했으니 재신임 국민투표가 성사될지 여부는 기다려 볼 일이다.
 그런데 그동안 대통령 재신임 문제를 논함에 있어 우리사회의 초점은 매우 불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고, 노무현 정부 출범은 겨우 8개월이 지났다. 대통령제 하에서 5년의 임기를 보장하는 이유는 임기동안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안정적 정치를 하라는 것이며, 임기 내에 재신임을 물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통령과 각 정당들은 서로 입장이 달라서, 누구도 왜 대통령이 국민의 재신임을 필요로 하는지를 속시원히 설명할 입장이 못되었다.
 사실 지난 8개월간 노무현 정부의 항해과정은 힘든 여정이었다. 정부 구성 시부터 구성원들의 친북색깔론, 대통령의 반미색깔론, 장관과 감사원장에 대한 국회 반대, 여당인 민주당 분당, 그리고 측근들의 비리 연루 가능성 등으로 하루도 편하게 넘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은 강력한 정부여야 할 신정부를 이제 국민의 처분에 다시 한번 맡기겠노라고 나섰다.
 현 상황만 보고 판단한다면 노대통령은 국민과 헌법이 보장한 역할과 권한을 제대로 찾지 못한 대통령인 것 같다. 출발부터 소수였던 여당을 이끌고, 일제시대부터 엄존해온 사회 기득권층을 상대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이었다면, 매우 신중하고 치밀한 정책과 전략과 전술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경솔해 보였고, 그의 참모들은 경륜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부를 지지할 여당은 나누어서 약화시켰고, 지지기반으로 만들었어야 할 검찰, 국정원, 언론, 그리고 거대야당은 싸움상대 자리에 두었다. 개혁 시도는 잘돼도 불안해 보이고, 안되면 타격을 크게 받는 투쟁일 수밖에 없다.
 재신임 요구상황을 판단해 보더라도, 측근의 비리와 부조리로 타격을 받은 대통령이 현 정치구도 하에서 역할수행이 힘에 부친다고 대통령임을 다시 확인해 달라는 모습이다. 동정심 많고 착한 우리 국민이 먼저 5년의 임기를 주었는데 재신임을 부정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특히 무엇보다도 임기 5년 중에 대통령의 인기가 부침하기 마련임을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이제 노대통령이 분명히 알아 둘 것이 있다. 우리 인생이 ‘다시’가 없는 것처럼, 대통령의 통치는 연습이 없다. 측근의 비리는 조사해서 처리하고, 소수여당으로 인한 허약함은 타협과 양보로라도 극복해야 한다. 언론에 져야 한다면 머리 숙여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에 십분 양보하여, 부시가 좋아하는 노대통령이 되지 않았는가? 이라크에 파병하고,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는 대통령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곡예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지금 노대통령에게 드릴 충고는 간단하다. 만약 국민이 재신임을 안 해준다면 큰일이고, 재신임을 해준다해도 얻는 것은 남은 임기동안의 역할과 책임의 무게가 두배로 무거워 진다는 점이다. 재신임이란 무능함을 덮어주는 수단이 아니며, 비리와 부조리를 가려주는 바람막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신임 문제를 재고하고, 임기 5년을 부여받은 당당한 대통령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겠는가.
 / 충북대 정외과교수 김 도 태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