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사진. / 이난영 제공

더 늦기 전에 봉사활동을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몸이 틈을 주지 않아도 농촌봉사 활동과 독거노인을 위한 손뜨개 봉사, 사회복지시설도 다녀 보았으나 녹록지가 않다. 한번 다녀오면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 며칠씩 병원에 다녀야 하니 주위에서 자기 몸이나 잘 관리하라는 충고를 듣기도 한다. 악기 하나 배웠더라면 재능봉사라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더니,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대전지부에서 자원봉사를 목적으로 한 풍선아트 교육을 청주에서 한단다. 어릴 적 풍선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떠올라 반갑고 기뻤다. 설렘으로 강의실에 들어서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풍선아트라고 해서 여자분들만 계신 줄 알았더니 강사 선생님도 남자이고, 절반이 남자이다.

첫날 강아지, 기린 등 동물을 만드는데 손은 어줍어도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가끔 풍선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몰입하다 보니 잡념도 사라지고, 시간이 어찌 잘 가는지 더위조차 느낄 수 없다. 주위를 돌아보니 투박한 손으로 따라들 하느라 절절매면서도 불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엔 미소 가득 머금고 있다.

풍선아트는 풍선을 이용 작품을 만들어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강아지, 곰, 달팽이, 꽃, 모자 심지어 자동차, 비행기까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각종 행사 시 분위기에 맞게 다양한 색상, 장식, 디자인을 첨가하여 행사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고, 생활 속에 접목하면 도움이 되는 풍선 활용법도 무궁무진하다. 또한 좌우 뇌를 모두 활용하므로 창조성 증진과 두뇌발달,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어 수업시간을 놀이시간처럼 즐긴다. 열의가 많은 분은 집에 가서 복습뿐 아니라 창작까지 하여 멋진 작품을 만들어 밴드에 올리는가 하면, 사진에 조예가 깊은 분은 수업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예쁘게 편집해 밴드에 올려 또 다른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40여 년 공직생활 하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교육을 받았었고, 많은 사람 앞에서 강의도 해보았으나 풍선아트 교육처럼 수강생과 강사가 호흡이 잘 맞고, 열심히 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모범생으로 소문난 나 역시, 풍선아트 교육만큼 온 힘을 다했던 적이 없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알록달록 풍선도 예술이지만, 배우고 나누고자 하는 열의 또한 예술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장 선생님부터 고위공무원까지 환갑을 넘긴 전직 공무원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치, 초등학생처럼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더위 속에서 나이도 잊고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10주 교육이 끝났다. 수료식 날, 수강생 전원이 동참하는 풍선아트 상록자원봉사단을 발족하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봉사단 발족을 축하하는 맛있는 떡까지 해온 수강생이 있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더욱 고조 되었다. 강사의 탁월한 능력과 배우려는 의지가 강한 수강생, 회장과 총무의 리더십, 강좌를 개설해준 연금관리공단 대전지부, 장소를 제공해준 청주시자원봉사센터가 만들어 낸 좋은 본보기이지 싶다.

며칠 후 인근 요양원으로 자원봉사를 나갔다. 한반도가 펄펄 끓는 최악의 폭염에 더위도 더위지만, 휴가철이라 각자 계획이 있을 텐데도 거의 참석하는 열정을 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마주하였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사분사분한 마음으로, 색색의 풍선으로 만든 예쁜 꽃을 한 송이씩 드리니 무표정하던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감돈다. 강사의 마술쇼가 펼쳐지자 경계하던 어르신들의 눈빛이 부드러워지더니, 환한 웃음 짓는다. 마술쇼가 끝나자 신명 많은 할머니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같이 따라 부르며 분위기를 돋우니, 다른 어르신들도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신다. 몸은 늙고 병들었어도 여럿이 함께 계시니 외롭지 않아 다행이구나 싶었다.

풍선으로 꽃 만들기 체험할 때는 눈에 생기가 돌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터질까 봐 조심조심 따라 하는 어르신들 모습이 천진난만해 보인다.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하다."고 했던가. 염천 삼복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나선 봉사활동이지만, 보람과 긍지의 시간이었다.

이난영
이난영 수필가

모두 하나 되어 웃는 모습을 보니 불교에서 말하는 나에게 도움 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란 말이 떠오른다. 진정한 도움, 진정한 사랑을 실현하는 풍선아트 봉사야말로 '자리이타'이지 싶다.

처음엔 데면데면하던 어르신들이 헤어질 때는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가 하면, 진심 어린 눈빛으로 손을 흔드는 어르신도 계셨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어 그런지 어르신들이 다 내 어머니 같고, 내 아버지 같아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풍선아트가 재미와 의미뿐만 아니라 배우는 행복, 나누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작은 나눔으로 마음속에 보람과 행복을 담뿍 담아온 것을 보면, 행복은 멀리 있는 파랑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내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난다. 내가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면 그것이 바로 무지갯빛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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