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옛 청주연초제조창 전경 / 중부매일DB
옛 청주연초제조창 전경 / 중부매일DB

[중부매일 문화칼럼 이명훈] 한달 여 전에 독특한 강연에 참석했었다. <문화 공간 우리>에서 주최한 것으로 초대 강사는 오디오 아티스트인 박용수 교수였다. 그는 어떤 계기로 인해 특수 스피커에 빠져들게 되었다면서 손수 제작한 옹기 스피커를 통해 에바 캐시디의 노래를 스토리와 곁들여 들려주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이색적인 스피커를 통해 들으니 절묘했다. 종이 스피커, 도자기 스피커, 부표 스피커, 오크통 스피커로 바뀌어 가면서 비틀즈, 레이 찰즈, 최백호 등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강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서자 철당간이 눈에 들어왔다. '독특한 감상을 마치고 나서자 바로 앞의 유서 깊은 철당간이 거대한 피리로 순간 보였다고 상큼한 거짓말을 얹어본다'라고 페북에 포스팅을 하며 제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고향 청주 산책 n>이란 제목이 슬쩍 떠올랐다.

n은 수학에서 임의의 수를 표기하는데 쓰인다. 철학자 들뢰즈가 세계의 종교는 n개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때의 n은 세계의 인구수를 뜻한다. 70 억 가령 되는 세계의 인간 한명 한명이 모두 고유의 단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무난할 것이다. 내 포스트의 제목에 붙은 n은 내 고향 청주에 대해 그동안 내가 띄엄띄엄 올렸던 포스트의 개수를 헤아리는 수고를 벗어나게 해 주는 동시에 청주를 소재로 한 포스트가 앞으로도 지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전문적인 포스트도 아니고 그냥 눈에 띄는 것을 나름의 상상으로 보는 소소한 것이지만 말이다.

LP가 수만장은 되는 까페에 친구들과 들른 적이 있는데 그곳이 그 다음 소재로 쓰여졌다. 연초 제조창이었다가 문화예술공간으로 바뀐 동부창고, 충북 문화관으로 바뀐 옛 도지사 관사, 어느 전통 찻집, 중심로인 성안길, 어느 까페에 장식용으로 설치된 펌프, 북부 터미널, 구두가 망가져 수선하면서 앉아 있던 구두방, 어느 고층 빌딩에 오르는 고층 사다리차, 가경 터미널까지 <내 고향 청주 산책 n>의 소재들로 하나하나 쓰여졌다.

청주 아닌 다른 고장 가령 전주나 강릉, 순천, 제주 등등에 대해서도 독특한 방식의 기획적 포스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시읍면 상관없다. 쓰고 싶은 주제가 내세울만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지나가는 리어커, 좌판의 행상, 어느 어머니의 얼굴, 시냇물,..그 모든 것이 될 것이다. 욕심을 좀더 붙인다면 고장끼리 차별화가 되는 방향이면 더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각 고장들이 훨씬 더 풍요로워지며 그것들은 서로를 띄워주는 풍선 역할도 될 것이다.

공공적으로 각 고장을 소개하는 방식은 제한적이며 대표적인 문물 소개 등 매너리즘에 빠진 면도 상당하다고 여겨진다. 유명하고 알려진 것들 위주이다보니 대동소이하며 알게 모르게 위계가 정해진다. 거기에 걸리지 않는 빛나는 보물들이 그 외에도 도처에 숱하다는 것을 나는 <내 고향 청주 산책 n>을 통해 시도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의미를 만들어 부여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사소한 사물들이든 그 안의 역사와 의미, 비밀들은 실은 어마어마하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그것을 보는 방법, 서술하는 방식, 보는 사람의 한계로 인해 드러나지 않는 것 뿐이다. 내가 사는 곳이 이처럼 다채롭고 몰랐던 것 투성이이며 전혀 색다른 색채로 드러나는구나 그런 느낌이 확장되고 공유되면 얼마나 좋을까. 문화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우리의 주변에 있는 것들 하나하나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 그 내밀한 소리를 번역하고 옷을 입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것들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것들이 새롭게 빛난다면 그것들은 또다른 새로운 방식으로도 빛날 수 있다. 청주에 간 적이 꽤 됐는데 다음 번에 포스팅 할 <내 고향 청주 산책 n>에는 어떤 것이 실리게 될지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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