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일 시인

    신해욱

이상한 전화가 왔다.

"기다려. 지금 갈게."
 

*

기다려. 지금 갈게.
 

*

식민지가 된 것처럼 나는 조용했다.

여분의 손에 수화기를 맡기고

두 손을 포함하여 나는

원래부터 그래야 했던 것 같았다.



우리는 SNS에 포위되어 살고 있다. 이 시는 신해욱 시인이 10여 년 전에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시를 읽는 순간 둔중한 공기망치로 얻어맞은 듯 비틀거린 적이 있다. 단 몇마디 언어의 간결한 배치로 우리에게 문자의 비수를 들이민다. 드디어 우리는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갈게.'나 '곧 갈게'가 아니고 "기다려. 지금 갈게."라는 문자를 통해 우리를 아직도 동일한 시공에 꼼짝 못하도록 꽁꽁 묶어 놓고 있다. 몸과 마음은 물론 "여분의 손"이 상징하는 '영혼'까지도 말이다. 분한 일이다. / 최호일 시인


9월부터 매주 월요일 한 편의 시와 해설을 곁들인 '시의 플랫폼'을 신설합니다. 시 해설은 최호일 시인이 진행합니다. 최 시인은 충남 서천 출생으로 2009년 '현대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고 시집으로 '바나나의 웃음'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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