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박은하 자유기고가·여행작가

본 사진은 칼럼과 무관합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본 사진은 칼럼과 무관합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중부매일 문화칼럼 박은하] 나는 199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하나둘씩 재건축 사업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앞 단지도 본격적인 재건축에 들어갔다. 현장을 지켜보니 철거 작업이 한창이다. 1984년에 완공된 5층짜리 아파트 20여개 동이 힘없이 쓰러졌다. 한낮에는 집에 있기 힘들 만큼 소음이 심하다. 아파트 주민회에서는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인한 소음과 분진, 먼지문제는 우리 동네만의 문제는 아닐 테다. 실제로 초등학교 옆에 있는 재건축 현장에서 아파트가 철거될 때 석면 등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섞여 나와 주민들이 다른 동네로 대거 이사를 갔던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 아파트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면서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섰다. 2000년대 이후에는 수도권 외곽으로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가 확산됐다. 이제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 만큼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1980년대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대부분 재건축을 했거나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수명은 약 30년 정도로 나타났다. 30년이 지나면 벽에 금이 가거나 녹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자료를 찾아보니 아파트 건축에 사용하는 철근콘크리트의 수명은 80~100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아파트는 30~40년 만에 재건축을 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사업성이다. 저층 아파트를 허물고 고층으로 올리면 사업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건설회사는 100년을 버티는 집을 짓기 보다는 30~40년 정도를 내다보고 아파트를 설계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는 바닥과 벽으로만 이루어진 벽식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벽식 구조로 아파트를 지으면 건설사 입장에서 원가절감은 물론 공사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 그렇다고 건설사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도 아파트가 30년이 넘었다고 하면 처분을 하거나 재건축 추진을 관행처럼 여기고 있지 않은가.

베란다에 나가 재건축 현장을 바라보니 마음이 복잡하다. 수 십대의 트럭이 쉴 새 없이 건축 폐기물을 실어 나른다. 그런데 이 많은 건축 폐기물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이곳에서 발생하는 건축 폐기물만 해도 어마 어마한 양인데 전국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양을 따져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양일테다. 건축 폐기물은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조각이 대부분이다. 보통 인체에 해로운 재료를 거르고 잘게 부순 후 건축 공사에 다시 쓰인다. 그런데 문제는 건축 폐기물 분리수거다. 건물을 마구잡이로 부수는 바람에 분리수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해로운 물질을 거르지 않고 다시 건축에 쓰기 때문에 새집증후군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박은하 자유기고가·여행작가
박은하 자유기고가·여행작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부 대형건설 현장에서 폐기물 무단 투기를 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농지나 바다에 버려진 무분별한 건축 폐기물은 환경오염을 초래한다.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할까. 정부는 건축 폐기물의 안정적인 처리를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자체는 건축 폐기물 불법처리 단속을 강화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건설사에서는 건축을 단기 사업으로만 보지 말고, 거시적인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더 이상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고 산과 숲을 밀어버려서도 안 된다.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만이 답이 아니다. 재정비나 리모델링을 통해 아파트의 수명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국민 역시 집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무조건 새집을 찾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집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오래 살 수 있는 집에 살고 싶다. 30년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아파트 대신 100년, 200년 후에도 남아 있을 튼튼하고 멋진 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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