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실체의 그림자'라고 했듯,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 밤하늘의 온갖 별들도 이름이 있고 외로운 초원에 피는 야생화에도, 또 바다속 작은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다. 이름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존재를 확인한다.
 우리사회에선 아기가 태어나면 한 살이요 곧바로 이름이 지어지고 호적에 올린 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세상을 살아간다.
 사람들의 이름은 무릇 친금감이 가고 부르기 쉬워야 한다. 박재관, 강보현, 이예슬, 송창희 등등은 기자가 아는 사람들의 아주 몇몇 이름들이다. 참으로 사랑과 정이 넘치는 친근한 이름이다. 철수와 영희는 오래전 초등학교의 교과서와 함께한 우리사회의 보통 명사와 같은 국민적 이름이 되었다.
 헌데 영원한당 정치인 '저철수'란 이름은 둘이다. 자연인으로서의 저철수가 있고 정치인으로서의 영원한당 저철수의원이 있다. 자연인의 저철수란 이름은 친근감이 있고 부르기 쉬운데 정치인인 영원한당 저철수의원은 친근감이 없다. 왜냐하면 자주 바뀌는 정치인의 이름으로 생경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제 또다시 생경한 정치인들의 이름을 수없이 듣게될 것 같다.
 총선 출마를 위해 이 정당 저 정당의 문고리를 잡고 이름을 바꾸려고 짹짹거리며 촐랑대는 정치참새들과 권력을 좇아 이 정당 저 정당을 전전하며 기생하여 구린 정치생명을 연명하려는 정치 모리배들이 많아서 그렇다.
 정치인들이 참새처럼 촐랑대며 찾는 정당의 당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릇 정당의 정강정책이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같을 때 정당에 당당하게 입당하여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 정치인들이 없기 때문에 삼삼오오 이 정당 저정당을 만들고 있지만 뿌리가 없어 휘청거린다. 그리고 곧 소멸한다.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민주당을 쪼개고 나와 새살림을 차린 열린우리당이 요즘 화제다. '야합의 정치인 000는 사퇴하라', '해바리기 영입이 웬말인가'라는 충주지구당 당원들의 시위속에, 당의 고문중 한사람은 총선의 승리를 위해서는 '도로 민주당'을 외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이들에게 '어미 고양이' 이야기의 우화 한토막을 들려주고 싶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자마자 이름을 '고양이'라 지었다. 그런후 힘이 센 호랑이가 되어 고양이 세계에서 왕이 되라고 '호랑이고양이'라 했다. 그러나 호랑이 보다는 용이 더 힘이 셀것 같아 '용고양이'라 고쳤다. 며칠후 용도 구름이 없으면 맥을 못출 것 같아 구름이라 고치려고 했다.
 그런데 또 구름을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란 생각에 '바람고양이'라 불렀다. 얼마후 또다시 바람을 막는 것은 벽인데하고 생각 하다가 벽을 뚫는 것은 쥐가 아닌가, 그렇다 '쥐고양이'다, 라며 고양이 어미는 무릎을 쳤다.
 그 순간 쥐를 잡아 먹는 것이 고양이가 아닌가. 결국 새끼 고양이의 이름은 '고양이고양이'가 되고 말았다.
 남의 것이 좋아보여서 그것을 좇는다 해도 결국은 자기에게로 돌아오듯, 자신의 본 모습과 함께 이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름은 내 본래의 이름이란 것을 교훈하고 있다.
 모두가 자기 이름으로 제 이름값을 해야 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