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서 시작된 구곡…쪽두리 쓴 각시와 신랑 바위형상
괴산군 정자·전망대 등 설정…환벽정·구름다리 등 볼거리

달천의 명소 9군데를 구곡으로 설정하고 시를 지은 '연하구곡가'의 제1곡 탑암.

# 연하구곡 이야기
 
괴산 산막이길 끝에 연하동이 있다. 연하동은 괴산댐 건설로 수몰되어 산쪽으로 올라와 새로이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연하동이 처음 기록에 나오는 것은 소재 노수신(盧守愼: 1515-1590) 연보(年譜)에서다. 1545년 을사사화로 파직된 소재가 순천, 진도로 유배된 후 20년만인 1565년 12월 이곳 괴산 연하동으로 이배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2년도 지나지 않은 1567년 10월, 소재는 선조임금의 부름을 받아 홍문관 교리가 된다.

연하동이 다시 기록에 언급되는 것은 소재 노수신의 10대손인 노성도(盧性度: 1819-1893)에 의해서다. 노성도는 속리산 너머 상주에 살고 있었으나 소재의 정신을 기리고자 이곳 괴산 연하동을 찾았다. 그리고 이곳에 수월정(水月亭)을 짓고 살면서 연하구곡(煙霞九曲)을 설정하고 '연하구곡가'를 지었다. '연하구곡가'는 그의 문집 '선집요결(選集要訣)'에 실려 있다.

'연하구곡가'는 칠성면 사은리에서 청천면 운교리에 이르는 달천의 명소 9군데를 구곡으로 설정하고 시를 지은 데서 연유한다. 제1곡 탑암(塔巖), 제2곡 뇌정암(雷霆巖), 제3곡 형제암(兄弟巖), 제4곡 전탄(箭灘), 제5곡 사기암(詞起巖), 제6곡 무담(武潭), 제7곡 구암(龜巖), 제8곡 사담(紗潭), 제9곡 병암(屛巖). 이들 중 탑암, 구암, 병암은 그 이름이 남아있다.

구곡은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가면서 설정된다. 그런데 연하구곡은 특이하게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면서 설정되어 있다. 제1곡 탑암은 운교리와 사은리의 경계지점에 있다. 크게는 선유대(仙遊臺)라 부르며, 그곳에 우뚝 선 바위를 탑바위라 부른다. 이 바위는 신부가 족두리를 쓴 모습이어서 족두리바위 또는 각시바위라 불리기도 한다. 각시바위 건너편에는 신랑바위가 있다.

선유대에는 선유대, 강선암(降仙巖)이라는 큰 글씨가 암벽에 새겨져 있고, 선유대 시도 작은 글씨로 암각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들 글자는 수몰되어 갈수기에나 확인이 가능하다. 제3곡 형제암은 현재 삼신바위 또는 삼형제바위로 재현해 놓았는데 유치한 수준이다. 제7곡 구암 역시 거북바위라는 이름으로 새로 조성해 놓았다. 제9곡 병암은 병풍루 아래에 있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확실치 않다.
 
 

# 현대판 산막이옛길 9경

산막이 옛길 기념비.

괴산군에서는 연하구곡을 따라 산막이옛길을 만들면서 새롭게 9경을 설정했다. 그것이 산막이옛길 9경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9경이 연하구곡에 대한 고증 없이 변형 왜곡되어 뒤죽박죽이 된 경향이 있다. 정자, 전망대, 바위, 다리, 길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9경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들 9경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제1경 환벽정, 제2경 망세루, 제3경 병풍루, 제4경 삼신바위, 제5경 연하협 구름다리, 제6경 각시와 신랑길, 제7경 각시바위, 신랑바위, 제8경 원앙섬, 제9경 선상유람길.

제1경 환벽정은 2011년 11월 11일 준공되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르고 나무도 파래서 환벽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건축은 충북 무형문화재 제23호 대목장 신재언씨가 맡아서 했다. 2층 누각으로 달천 주변의 산하가 완벽하게 조망된다. 환벽정은 노수신 적소 수월정(水月亭)과 함께 산막이길 최고의 명소다.

제2경 망세루와 제3경 병풍루는 인위적으로 만든 전망대 겸 쉼터다. 망세루는 세상을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남매바위 위에 만들어 괴산호 건너 군자산과 옥녀봉을 전망할 수 있도록 했다. 병풍루는 병풍바위 위에 세운 전망대로 호수 건너 한반도 지형과 환벽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환벽정이 소나무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제5경 연하협 구름다리는 2016년 9월 개통되었다. 산막이옛길과 충청도 양반길을 연결하는 현수교다. 길이 134m, 폭 2.1m로 다리 아래로 유람선이 운행한다. 현수교기 때문에 약간의 출령임이 있다. 다리 동쪽에는 갈론나루가 있고, 서쪽에는 굴바위나루가 있다.

제7경이 각시바위와 신랑바위다. 연하협 구름다리 상류 2㎞ 지점에 있는 바위로 호수의 이쪽과 저쪽에서 마주보고 있는 상사바위다. 호수 동쪽에 각시바위가 있고, 서쪽에 신랑바위가 있다. 각시바위는 족두리를 쓴 모습이어서 족두리바위로 불리고, 신랑바위는 사모관대를 쓴 모습이어서 사모바위라 불리기도 한다. 산랑바위 가는 길에 제8경 원앙섬이 있다.
 
 

# 노수신 적소 수월정 이야기

노수신 적소(謫所)인 '수월정'.

소재 노수신은 중종 때인 1543년 대과에 장원급제해 성균관 전적으로 벼슬길에 오른다. 그러나 1545년(인종 1년) 9월 을사사화 때 파직되어 충주로 내려온다. 그리고 1547년(명종 2년) 3월 순천으로 유배된다. 그 해 윤9월 양재역 벽서사건 때문에 진도로 이배되었고, 그 후 19년간 유배생활을 한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죄가 감해져, 노수신도 12월 괴산 연하동(煙霞洞)으로 이배되었다. 유배생활이 끝난 것은 선조가 즉위한 1567년 10월이다. 그러므로 괴산에서 2년이 조금 못되는 기간 유배생활을 했다. 노수신 적소(謫所)인 수월정 입구에는 1994년에 세운 문간공 소재 노수신 유적비가 있다.

"이곳은 연하구곡(煙霞九曲)으로 알려진 경치 좋은 곳이다. 강의 한 가운데 섬이 있고, 그곳에 초옥(草屋)이 하나 있었다. 초옥의 이름은 수월정(水月亭)이며, 괴산댐 건설로 수몰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노수신 선생의 애환이 깃든 이 수월정은 후손들이 어렵게 보존하였다. 다행히 1987년 충북 기념물 제74호가 되어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수월정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 바깥문을 들어가야 한다. 안채인 수월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마루에 오르면 수월정 중건기를 볼 수 있는데, 1987년(정묘) 가을, 후학인 광주이씨 이복(李馥)이 지었다. 방안에는 노수신의 초상화도 걸려 있다.
 
 

# 산막이옛길을 지켜나가는 사람들
 

산막이옛길서 운행하는 유람선,

산막이옛길 조성으로 가장 혜택을 본 마을은 사오랑 마을이다. 이곳에 아름다운 명품길이 만들어지자, 사람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고, 주민들도 지속가능한 마을 발전을 추구하게 되었다. 단순한 볼거리 외에 즐길 거리, 먹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만족하는 모델케이스를 만들어간 것이다. 산막이옛길의 성공은 농촌마을 개발의 모범이 되었고, 마을의 소득증대에도 크게 기여했다.

산막이옛길 개발과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마을은 사오랑리, 갈론리, 외사리, 학동리이다. 이들 4개 마을을 비학봉 마을이라고 부른다. 사오랑 정보화마을은 산막이옛길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산자수명한 군자산과 천장봉 등이 있어 숲생태 체험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갈론리는 갈은구곡 입구에 있는 마을로 산수와 풍류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외사리에는 외사초등학교 자리에 만든 마을체험관이 있다. 학동리에는 농장과 낚시터가 있다. / 이상기 충북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박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