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원을 담다
세미원을 담다
  • 중부매일
  • 승인 2018.09.0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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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사진 / 김윤희 수필가

일곱 명의 친구들이 연꽃맞이 길을 나섰다. 양평에 있는 세미원이다. '관수세심, 관화미심 (觀水洗心 觀花美心)' 물을 보면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그 의미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들끓고 있는 햇살에 머리가 벗어질 지경이지만 연꽃으로 가득한 세미원은 역시 의연하다. 아니, 외려 더 많은 꽃과 향기로 찾는 이들에게 잔잔한 행복을 주고 있어 폭염을 무색하게 한다.

不二門으로 들어섰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란다. 태극문 위에 쓰여 있는 불이문 문구를 보고 다소 생뚱맞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곳 세미원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된다'는 의미로 그 진리의 원형을 이끌어 내고 있다. 심사숙고한 흔적에 고개를 숙이며 문을 통과하니 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청량한 소리에 마음이 맑아진다. 냇물 가운데로 놓인 앙증맞은 징검다리가 우리를 천진하던 어린 시절로 길을 낸다. 평소 나이들어 사진 찍기 싫다던 그 말은 다 어디로 가고 휴대폰 카메라에 서로 얼굴을 들이민다.

인생 후반기로 들어선 여인들이 까르르 웃음을 쏟아내며 주름살을 하나씩 지우는 모습을 보고 항아리 분수가 물줄기를 솟구쳐 부른다. 항아리에서 분수를 뽑아 올리다니,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항아리는 물은 담는 그릇으로 예로부터 우리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어머니가 우물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오던 물동이도, 길어다 부은 부엌의 커다란 독도 오지항아리 아니었던가. 그 항아리에서 물을 뿜는다. 수백은 되어 보이는 크고 작은 항아리에서 물줄기가 일제히 춤을 춘다. 숨통 죄듯 무섭게 달구던 태양도 찔끔한다. 가슴이 뻥 뚫린다. 항아리와 물, 그리고 어머니. 그 앞에 서니 왜 문득 강은교님의 시 한 구절이 와 닿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물을 맑히느라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이고 연꽃이 혼신으로 피어있는 단지에 이른다. 연꽃을 흔히 불가의 꽃이라 한다. 진흙물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연잎 위에는 오물이 머물지 않음이 그러하다. 꽃이 피면 물속 더러운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 가득, 늘 맑음을 유지하는 것 또한 그러하다. 줄기는 유연하여 바람에 부러지지 않고 자기를 지켜간다. 이러한 자세를 보노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는 느낌이다. 은은하고 우아한 자태에 잠시 숙연해진다.

연꽃의 일생은 또한 어머니의 삶과 닮아있다. 그랬다. 어머니는 자식을 잘 키워내기 위해 진흙탕 속도 마다 않고 들어선다.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물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아니 수없이 흔들려도 의연하게 견디어 내는 것이리라. 단단하고 강한 모성으로 꽃을 피우고 맺은 씨앗이니 천년이 지난들 어찌 싹을 틔우지 못할까. 화려하지만 격함이 없는 여인, 참고 삭이며 기다리는 어머니를 가슴 가득 품고 있는 세미원은 곳곳이 의미롭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하나 되는 물머리를 만나기 위해 다리 앞에 섰다. 세심로(洗心路)를 알리는 돌비석이 발길을 잡는다. 호호양양 흐르는 한강물을 보며 마음을 씻어내라며 빨래판으로 된 길을 안내한다. 세속에 더렵혀진 마음을 깨끗이 빨래판에 비벼 빨 듯 한발 한발 발걸음을 정하게 내 디디란다. 자신을 돌아보며 살라는 의미일 게다.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사실 세미원은 애초부터 이리 작정하고 조성된 정원은 아니었다.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남한강이 흘러오면서 부유물이 신 양수대교 교각 밑으로 밀려와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한다. 이를 본 주민과 환경단체원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쓰레기를 일일이 수거한 다음, 수질정화 식물인 연을 심어 가꾸었다. 쓰레기로 오염된 물에 거대한 연꽃단지를 만들어 정화시켜 나가기 시작한 사람들, 그들은 다름 아닌 민초들이었다. 이후 경기도에서 대대적으로 재정을 지원하여 오늘날 물과 꽃이 어우러지는 정원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서울로 흘러드는 생명수를 맑히느라 힘겹게 여름을 이겨내고 있는 세미원을 지나 두물머리로 향했다. 수십 척의 배들이 조르르 엎드려 등을 내어 준다. 연꽃의 또 다른 모습이다. 몸은 온전히 땅에 발도 붙이지도 못한 채, 제 등을 밟고 지나가란다. 일명 배다리다. 배다리는 물 위에 배들을 일정하게 띄워놓고 그 위에 판을 얹어 만든 다리이다. 배와 배 연결되는 부위를 밟으면 흔들린다. 나도 따라 흔들흔들, 흔들리는 마음에 세미원의 의미를 담아본다. 은은한 연꽃 향이 묻어나 내 마음이 흔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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