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의 달인들
메모의 달인들
  • 중부매일
  • 승인 2018.09.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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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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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세상의 눈 김동우]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메모한다. 나중에 보기 위함이다.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이 같은 번거로운 작업을 회피할 수 없다. 메모의 도구는 나뭇잎과 돌, 동물가죽 등부터 종이, 촬영, 스마트폰 메모장 등에 이르기까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메모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전하거나 자신의 기억을 돕기 위해 짤막하게 남긴 글이나 기록'이다. 메모는 기억력을 보완할 수 있다. 지적 활동에는 뛰어난 기억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메모의 역할도 이에 못지않다. 공부나 업무 등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은 메모를 잘 하고 관리하는 습성이 있다. 책상 등 주변에는 파리 대가리만 글자[蠅頭文字:승두문자)가 빼곡히 쓰인 메모지가 늘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앞서간 사람들은 어떻게 메모를 했고, 어떻게 메모를 관리해 지적 생산물을 창출했는가? 메모의 달인하면 조선 실학자 안정복(安鼎福)을 으뜸으로 꼽을 수 있다. 그의 서재에는 초서롱(?書籠)과 저서롱(著書籠)이란 바구니가 있다. 초서롱에는 손바닥 크기의 한지와 나뭇잎, 천 등으로 그득했다. 이들에는 지식과 정보의 편린들이 깨알처럼 적혀있었다. 그가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나 다른 사람의 책을 보고 베낀 자료들이었다. 한지 등에 묻은 손때는 그가 수시로 꺼내 자료들을 읽어보았음을 알 수 있다. 초서롱에서 수년 동안 묵은 자료들이 서로 융합하더니 두 권의 책이 저서롱에 담겼다.<동사강목>과 <잡동산이>. <동사강목>은 단군 조선부터 고려 말까지 우리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이 책이 출판되자 학자들은 우리 역사와 국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잡동산이>는 방대한 저술이지만 체계가 서 있지 않아 잡동사니 지식들이 망라되어 있다. 가히 메모의 위력이 보여준 저술들이다.

중국 북송 장횡거(張橫渠) 역시 메모의 달인이었다. 그는 무언가 깨달았다고 생각하면 시공간에 관계없이 무조건 기록했다. 그의 주변에는 늘 문방사우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렇게 메모한 기록을 바탕으로 <正夢>이란 책을 지었다. "생각을 정밀하게 하고 실천에 힘쓰며 깨달음이 있으면 신속히 적었다[精思力踐 妙契疾書]" 주자(朱子)가 <장횡거찬>에서 장재의 메모 습관을 보고 한 말이다. 여기서 '묘계질서(妙契疾書)'란 성어가 탄생했다. '묘계'는 '문득 깨우침'을 말한다, '질서'는 '빨리 쓰다'는 뜻이다. '疾'은 '병(病)'이 아닌 '빨리 달리다'를 말한다. '묘계질서'는 '예고 없이 깨달은 지식이나 지혜를 빨리 기록하다'는 의미다.

이태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메모 달인에서 빠지지 않는다. 평생 동안 3만여 장의 조각 메모장을 남겼다. 그가 미술, 해부학, 과학, 문학 등에 심오한 지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메모 덕분이었다. 그는 이런 메모 덕에 시대를 앞서간 천재로 불리게 되었다. 미 대통령 링컨은 항상 긴 모자 속에 필기구와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며 문득 떠오른 착상이나 보고들은 지식과 정보를 기록했다. 오스트리아 음악가 슈베르트는 떠오른 착상을 놓칠세라 흰 와이셔츠나 외투에까지 악상을 메모한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밥을 먹는 도중 그에게는 계산서도 훌륭한 메모지였다. 수많은 불후작품을 남기고 '가곡의 왕'이 된 비결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정약용 역시 독서 등에서 깨달은 것들을 모두 적는 메모 달인이었다.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포함해 평생 동안 메모해둔 자료를 모아 499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펴냈다. 청나라 건륭제 칠순잔치 축하객으로 가서 보고 들은 것을 메모한 뒤 펴낸 책이다. 그의 <호질>도 청나라 가게 벽에 걸린 족자의 기이한 문장을 통째로 베껴 만든 책이다. 이덕무의 <耳目口心書>는 메모 그 자체였다. 제목 그대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새긴 생활과 풍경 등에 관한 기록이다.

메모는 지식이나 정보 등의 단순한 기록이다. 기록은 눈과 머리로 읽거나 귀로 듣는 것에 손으로 쓰는 작업이 더해지는 행위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록하다'는 '다시 보다'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다시 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창조의 씨앗이 잉태된다. 그래서 메모는 해야 되고 또 반드시 다시 보아야 한다. "자신이 접하는 모든 정보를 기록하라."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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