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최시선 수필가

/ 클립아트코리아

제주도 서귀포 해변에 왔다. 아내와 함께 제주도 여행 중이다. 아내와 단 둘이 제주도에 온 것은 신혼여행 후 처음이다. 내년이면 결혼 30주년이니 세월도 참 많이 흘렀다. 한 여자와 혹은 한 남자와 그 오랜 세월을 산다는 것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살수록 단점이 보이고, 나만 사랑해 달라고 하니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견디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마도 인연이 지중했기 때문이리라.

배낭에 블루투스 스피커와 하모니카를 준비해 갔다. 연주할 만한 곳이 있으면 동영상 촬영을 하고 싶었다. 하모니카는 키별로 세 개를 가져갔고, 반주음악인 MR은 핸드폰에 담아갔다. 세상 참 좋다. 블루투스 기능이라는 것이 있어 핸드폰과 스피커가 그냥 연결된다. 핸드폰에 있는 음악파일을 터치하면 그것이 블루투스 스피커에 그대로 출력된다. 스피커의 출력이 자그마치 30와트이니 연주하기에 손색이 없다.

제주 해변은 언제나 보아도 좋다. 천혜의 섬이 아닐 수 없다. 바람은 시원하지만 햇볕은 따갑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다. 사람이 많으면 어쩌나 하고 내심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이다. 전문 연주자가 아니라서 사람이 많으면 왠지 쑥스럽다. 무슨 연예인 동영상 촬영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이 쭉 몰려들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기저기 가족 단위로 놀러온 사람들이 있다.

용기를 내어 스피커를 꺼내어 목에 걸고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동영상 촬영은 아내가 했다. 두어 번 시도하다가 서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태껏 집에서는 잘 되다가 막상 동영상을 촬영하려고 하니 잘 되지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딱 한 가지! 그것은 쑥스러워서다.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스스로를 의식하고 잘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몇 번을 연주한 끝에 등대지기와 바위섬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바다에 왔으니 바다와 관련된 곡만 연주하기로 했다. 파도가 밀려오는 장면을 포착하고 멀리 보이는 빨간 등대까지 화면에 넣으려 하니 아내가 참 바쁘다. 그것도 전문 촬영기기도 아니고 기껏해야 핸드폰 카메라다. 그런데 성능은 좋다. 나름 화질도 좋고 녹음도 선명하다.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장소를 옮겨서 바위가 많은 해변으로 갔다. 용암이 바다로 흐르다가 그대로 멈추었는지 뾰족하면서도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석이 즐비하다. 좀 펑퍼짐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이번에는 다른 곡을 연주하기로 했다. 여름 햇볕은 강렬하다. 송곳처럼 피부라도 파고들 것처럼 쏘아댔다. 벌써 팔뚝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모자를 쓰고 폼을 잡고 아내에게 촬영 준비를 부탁했다. 그리고는 숨을 고르며 연주를 시작했다. 섬집아기, 섬마을 선생님, 선창 등을 거의 틀리지 않고 완주했다. 참 뿌듯했다. 아까 저쪽 모래 해변에서 두어 곡을 연주해 봐서 그런지 이번에는 자신감이 붙었다.

뭔가 작품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냥 되지를 않는다. 할 줄은 알아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란 더 어렵다. 하모니카를 그냥 부는 건 되는데 이걸 반주음악, 즉 MR에 맞추어 연주하기란 쉽지 않다. 수없이 반복하고 반복해야 그제야 된다. 그리고 음악이라는 것이 한 치의 오차가 없다. 마치 수학 문제와 같다. 음정 박자가 어디 한 곳이라도 틀리면 그냥 빗나간다. 자신은 금방 안다. 틀렸다는 것을….

하모니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불기 시작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오로지 그 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모니카를 배웠다. 그것도 혼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교본에 있는 것을 홀로 터득했다. 그때는 그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다. 어지간히 되니까 하모니카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하모니카의 종류가 수도 없이 많고 주법도 다양했다. 노래만 알면 되기에 그냥 쉽게 생각했는데 강의를 들어보니 결코 쉬운 악기가 아니었다. 트레몰로 하모니카만 해도 키별로 다하면 24개나 된다. 구멍이 보통 22홀인데 연주할 때 시작 음을 잡기가 쉽지 않다. 시작 음을 잘못 잡으면 연주를 망칠 수도 있다. 순전히 감각적으로 여기다 하고 입을 대 주어야 한다.

하모니카는 장점이 많은 악기다. 우선 휴대하기가 편하고 들숨과 날숨을 동시에 하니 호흡 강화에 좋다. 그 어떤 관악기도 들숨과 날숨을 동시에 하는 악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 다 내쉬는 숨으로 연주한다. 그리고 소리가 애잔하고 맑다. 마치 가을밤에 하늘에서 유성이 흐르다가 저 산 바위에 걸터앉아 홀로 빛나는 것처럼 낭랑하다.

그 옛날 초등학교 친구가 갑자기 이사를 간다기에 아쉬운 마음에 하모니카를 불어주었다. 그 애는 끝까지 듣더니 조용히 박수를 쳐 주었다. 그때도 유성이 흐르는 가을밤이었다.


 

최시선 수필가

# 약력
▶2006년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내가 묻고 붓다가 답하다'
▶진천 광혜원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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